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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칼럼]「가족해체」 걱정스런 미래

입력 | 1999-05-07 19:40:00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족해체’ 현상이 자주 화제에 오른다. 실직이 이혼으로, 이혼이 부모와 자녀 사이의 헤어짐으로 이어지면서 청소년 범죄가 늘어난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가족해체’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결혼과 가족 제도에 이미 세계적 차원의 큰 변화가 일어나는 데 따른 결과이다.

우선 동성연애와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시작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서유럽의 몇몇 선진국에서는 동성 사이의 결혼을 합법화했으며 동성의 결혼은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동성의 동거는 제도적으로 인정하는데 이 흐름은 더 커질 것이다.

◇동성연애 합법화 추세

이 흐름에 저항적인 미국에서도 군대의 경우 변화가 이뤄졌다. 동성연애자인가 여부를 먼저 확인한 뒤 동성연애자는 받아들이지 않던 미군이 동성연애자인가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단계로 바뀐 것이다. 모병관은 “귀하는 동성연애자인가”라고 묻지 않아도 되고 입대지원자는 “저는 동성연애자입니다”라고 자백하지 않아도 된다.

동성연애자에 대한 관용이 이뤄지게 된 계기는 93년 영국왕립의학협회의 발표였다.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이 학회는 동성연애가 변태도 범죄도 아니며 유전자의 산물일 뿐이라는 연구결과를 승인했던 것이다. 동성연애자들은 ‘환호작약’했다. “들었지? 우리는 변태자도 범죄자도 아니래. 유전자를 그렇게 타고났을 뿐이래.”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에도 동성연애자들이 적지 않다. 대학 게시판에 ‘함께 모여 동아리를 만들자’는 광고가 내걸리기도 한다. 앞으로 한 세대쯤 지나면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동성연애에 대한 법적 관용만이 전통적인 결혼 및 가족제도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는 않다. 그것보다 더 심각하게, ‘일생일대의 대사(大事)’ 또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여겨 온 결혼과 출산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확산됨에 따라 이혼율과 미혼모 출산율이 늘어나 미국의 경우 공식 통계로만 이혼율은 60%에 접근했으며 신생아 가운데 미혼모 자녀가 30%를 넘어섰다. 이혼을 거쳐 쉽게 재혼하다 보니 “여보! 당신 아이와 내 아이가 우리 아이를 때리고 있으니 빨리 가서 말립시다”라는 말도 때때로 듣게 됐다. 남녀 모두 첫번째 결혼을 통해 얻은 자녀를 데리고 재혼해 새 자녀를 얻은 집안의 풍경이다.

◇급증하는 이혼―재혼

21세기에 들어가면 의학의 발달로 사람의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이혼은 더욱 늘어나리라고 미래학자들은 내다본다. 초혼 생활은 초혼의 자녀들을 시집장가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짓고 재혼을 통해 20∼30년의 여생을 새롭게 보내는 경향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일본에서 지난 몇해 사이에 부쩍 늘어나는 ‘정년 퇴임 이혼’ 현상이 이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남편이 정년퇴임으로 받은 퇴직금을 거머쥐게 된 부인이 이혼을 선언하고 새 삶을 설계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21세기의 세계화 정보화 현상도 결혼과 가족 제도의 변화를 재촉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예언한다. 여성의 취업률이 높아짐에 따라 부부와 자녀가 각자 이곳저곳에, 심지어 이 나라 저 나라에 흩어져 사는 ‘원격가족’의 형태가 자리잡고 미혼모 등 홀로 자녀를 키우는 ‘싱글 마더(Single Mother)’ 가정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몇해 전에 나온 미국 영화 ‘절연’이 예고했듯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절연’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일마저 벌어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여러 가족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 네 식구 내 식구 구별없이 키우며 사는, 또 하나의 가족 형태도 실험될 것이다.

2000년대를 눈앞에 둔 오늘날 결혼과 가족에 관한 새로운 흐름을 자신의 호오(好惡)에 관계없이 냉정히 직시하며 거기에 걸맞게 다음 세대를 준비시켜야 하지 않을까. 선진국의 일각에서 ‘가족해체’ 현상에 위기를 느껴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구호 아래 결혼과 가족을 가장 중시하는 운동이 새롭게 일어나는 현상에도 유의하면서. 1900년대의 마지막 ‘가정의 달’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썼다.

김학준〈본사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