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68년 작고)는 전쟁 중 월북하면서 충북 괴산에 있는 토지 16만7천5백여평을 H씨에게 관리해달라고 맡겼다. H씨는 95년 ‘홍씨 가옥의 수리비용을 마련하겠다’며 일부 토지의 매각신청을 서울가정법원에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록 북한에서 부총리까지 지낸 인물이지만 홍씨의 토지 소유권은 남한 사법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사는 홍씨 후손들은 괴산 땅을 되찾는 데 별 문제가 없다. 태평양 법무법인 김종길(金鍾吉)변호사는 “홍씨 후손들도 대한민국 헌법상 한국인인 만큼 상속등기만으로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북한에 땅을 두고 온 실향민들도 통일후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이북 5도청이 70년 가호적(假戶籍) 취득시 집계한 1세대 실향민은 대략 5백46만명. 이중 1% 정도가 토지등기권리증 등을 소지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북도민회 이인화(李寅華·72)중앙연합회 의장은 “대부분의 실향민들은 북한에 두고 온 재산찾기가 통일에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든지 ‘재산포기 선언’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1세대 실향민 중에는 조상의 뼈가 묻힌 선산(先山) 등의 소유권에 집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북한 땅은 모두 12만3천2백㎢로 한반도의 51%를 차지한다. 이중 46년 3월 토지개혁으로 몰수한 땅과 김일성(金日成) 부자정권이 지속적으로 국유화한 토지가 논란대상이다. 특히 남한으로 내려온 대지주와 기독교인 등이 소유했던 42만건, 1백만 정보의 몰수토지는 통일후 소유권 분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90년대 들어 이루어진 독일 통일은 이질적인 체제통합에 따른 다양한 법률분쟁을 폭발시켜 ‘통일시대의 리걸 스탠더드’를 찾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법률가들은 말한다.
90년 동서독이 통일된 뒤 옛 프로이센 지방의 귀족 출신 2명은 “옛소련 당국에 빼앗겨 국유화된 영지(領地)를 돌려달라”며 독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의 영지가 속한 옛동독의 하르츠 지방은 대규모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이들의 헌법소원은 독일 통일후 폭죽처럼 터져나온 2백36만건의 토지 관련 소송중 하나에 불과했다. 헌법재판소는 ‘동독 정권 수립 이전 소련 군정의 불법행위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며 반환불가 판결을 내리면서도 통일정부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독일 헌재의 판결은 통일을 묵인해준 소련 당국의 입장까지 고려한 것으로 해석됐다. 소련 군정이 빼앗은 토지의 반환을 인정해주면 러시아 정부에 대한 소송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컸다.
독일 당국은 동독 정권이 들어선 이후 몰수된 토지에 한해서는 엄청난 행정력을 동원해 아직도 원주인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통일협약은 사유재산권 보호를 명분으로 ‘동독지역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불법행위에 대해 피해자에게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간 홍콩의 주권에 대한 중국과 영국간의 협상에서도 핵심의제는 토지였다. 영국여왕으로부터 땅을 임대받은 홍콩기업들이 귀속후 중국이 임대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임대기간을 연장하지 않는 사례가 속출했다. 당황한 영국정부는 임대료 수입을 중국과 나누겠다며 가장 먼저 토지문제를 매듭지었다.
북한내 부동산 소유권 문제와 관련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사유재산권 보장을 규정한 헌법정신에 따라 원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등기부 소지행위를 사형 등 엄벌로 다스렸고 지적(地籍)원부 조차도 폐기해 소유권 확인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인만(金仁滿)변호사는 “동독은 건축토지 등기를 완벽하게 보관했고 서독내 실향민 상당수는 60년대 말까지도 재산세를 내는 등 소유권 반환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며 통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라고 말했다.
서우석(徐佑錫)주공 주택연구소 선임연구원도 “토지 측량점이 이미 달라져 설사 등기원부가 있더라도 자기 소유 땅을 확인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기술적 법리적인 문제를 떠나 ‘원소유자 찾기’가 확산되면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게 되고 통일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결과를 빚는다는 우려도 나온다.
두번째는 보상. 원소유자에게 몰수토지를 돌려주지 않되 돈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방안이다. 북한 주민의 점유권을 인정해 생활을 안정시키고 생산활동을 보장할 수 있지만 막대한 보상비와 원주인 확인이 난제다. 김종길변호사는 “현실적으로 일제시대 토지문서 등이 유력한 증빙서류가 되겠지만 대부분 서류가 멸실됐거나 일본명으로 기재돼 법률적으로 원소유자를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별도의 보상없이 남한이 북한 부동산을 재국유화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이 방안은 복잡한 법률분쟁과 보상비 조달문제가 일거에 해소되고 북한경제 재건에 유리하지만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이 따르게 된다.
정부와 산하연구소는 북한 부동산 소유권 문제와 관련해 공개적인 논의를 자제하고 있다. 북한이 이같은 논의를 ‘흡수통일론’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하고 자극받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태평양 조성민변호사는 “통일 한국의 부동산 처리문제는 법리(法理)를 떠나 북한의 경제회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변호사 감정평가업 지적업계에는 통일이 되면 수십년간 매달려야 할 일감이 생겨날 것이란 기대감이 많다. 김종길변호사는 “자료가 사라져 통일과 함께 소유권 대란이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며 “지금부터 남아있는 자료라도 꾸준히 축적해 통일후 빚어질 극도의 소유권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