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아침을 열며]현각/진정한 행복은 내안에 있다

입력 | 1999-05-09 19:07:00


며칠전 광주 5·18묘역을 둘러봤다. 내 또래 젊은이들이 민주화를 외치다 처참하게 죽어간 사진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나도 미국의 386세대다. 굳이 학번을 따지자면 83학번(예일대)이고 신입생때부터 ‘레이건 반대’와 ‘총장 퇴진’을 외치며 데모대의 선두에 섰던 운동권 학생이었다.

★美선 시위등 적극 참여★

3학년 때인 86년 5월 학교 이사회날이었다. 당시 재정이 풍부했던 예일대는 미국 내 다국적 기업에 돈을 투자했다. 그 중 막대한 돈이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유명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결국 예일대가 투자한 돈은 백인고용을 늘리고 백인회사를 살찌워 아파르트헤이트를 심화시켰다.

투자 계획을 결정하기 위해 이사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예일대 학생 4천여명은 본부 건물 앞에 모여 ‘남아프리카 투자를 중단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그날 오후 날아온 소식은 학교측이 투자를 계속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성난 학생들은 격렬한 항의를 시작했다. 어깨동무를 하고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나는 핸드마이크를 들고 열심히 데모대를 지휘했다. 시위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한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그는 카터 행정부 때 외무장관으로 일했던 미국 내의 영향력 있는 지식인 중 한사람이었다. 이사회의 일원으로 학교에 들렀던 것이었다.

나는 경찰이 한눈 파는 틈을 타 그에게 달려갔다. 한주먹에 그를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그의 뒷덜미를 잡고 주먹으로 내리치려는 순간 갑자기 내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 뭘 하려는 거지?’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평화를 구한다면서 사람을 때려눕히려 하다니…. 주변의 모든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시위에 열심인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의 입은 평화를 외치고 있었지만 얼굴은 분노로 가득했다.

진정한 평화란 과연 무엇인가. 내 안의 평화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64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예수의 가르침을 배우며 자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님은 나를 비롯한 8명의 형제를 모두 가톨릭계 중고교에 보냈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갔다. 대학생활은 미국의 전형적 젊은이들의 삶이었다. 매일 파티에서 술을 진탕 마셨고 여자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당구를 특히 좋아해 당구장에서 살다시피했다.

나는 그날 데모 사건 이후 삶에 커다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졸업과 동시에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를 돌아다녔다.

자유로웠지만 마음 밑바닥에 흐르는 허무감을 이길 수 없었다. 2년여의 여행을 끝내고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느날 나는 한 교수님으로부터 “오늘 생불(生佛) 한 분이 강의를 하러 온다. 놓치면 후회한다”는 말을 듣고 강의실에 들어섰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하버드대의 내로라하는 교수들을 포함해 1천여 학생들이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날 강사는 후일 나의 은사가 된 한국의 숭산스님(현재 서울 수유동 화계사 조실)이었다. 그는 “마음이 무엇이냐” “고통은 어디에서 오느냐” “신은 있느냐” 등 다양한 질문에 아주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진리를 찾고 싶은 사람에게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 배고픈 사람에게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직 수행과 명상을 통해 너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이 진리를 찾는 길이다.”

그렇게 숭산스님을 만났고 마침내 출가를 했다. 한국생활 어언 9년째. 가끔 미국 대학동창들을 만나면 그들은 오히려 나를 부러워 한다. 상류사회에 진입한 그들의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마음속은 허무감으로 가득하다.

내 주변에는 한국 친구가 많다. 그들에겐 고민이 많다. 최근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는 한국 친구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오직 돈만 쫓으며 사는 친구들도 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주변 상황은 항상 변한다. 물질이 풍요롭다고 해서 걱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바깥이 아닌 내 속에서 찾아야 한다. 부처는 이미 내 안에 있다.

현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