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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순원/한국경제 좋아지고 있다지만…

입력 | 1999-05-10 19:20:00


한국 경제의 회복 징후가 여기 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산업 생산은 3개월 연속 상승세를 나타내면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5개월 연속 상승해 74.6%까지 높아졌다. 특히 자동차 반도체에만 국한되던 생산 회복세가 비금속 광물, 신발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 內需가 회복세 주도 ▼

산업생산의 회복세는 민간 소비의 회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통신기기 등을 중심으로 내수 확산이 경기를 주도하고 있다. 이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 가치의 상승으로 인해 소비 심리가 크게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재정지출 확대와 저금리 정책 등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도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할 때 현재 경기는 이미 바닥을 지나 회복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경제 위기의 여파로 지난 해 실물경기가 워낙 침체됐기 때문에 전년동기대비로 측정되는 각종 경제 지표가 경제 상황을 실제보다 과대포장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최근의 경기침체가 과거처럼 수급상의 괴리보다는 외환 유동성 부족과 금융 부실, 그리고 국제 금융 위기에 기인한 점을 감안하면 향후 경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경기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최근 경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잦아지고 있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경기와 관련된 불안감은 크게 경기 회복의 지속 여부와 경기 회복의 속도로 집약된다.

첫째, 경기 회복의 질적 성격에 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과거에는 투자나 수출이 경기 회복을 주도한데 반해 현재는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 위축과 수출 부진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소비에만 의존하는 경기 회복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실업 문제도 투자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생산 설비는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아직은 충분한 상황이고 구조조정과 대외 환경 악화로 인해 설비투자와 수출이 잘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 회복에 의한 경기 회복세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기 어렵다.

둘째, 정부가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여력에 한계가 오지 않았느냐는 견해이다. 금융구조조정이나 실업자 지원 등으로 재정 적자가 금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5.5%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 구조조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 재정 수요는 여전히 많은데 비해 경기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세수 부족에 따라 재정의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안정성장 유지 ▼

그러나 성장률이 5%대를 유지하고 정부 보증채권의 절반 가량이 해소된다면 재정 적자는 좀더 늘어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본다.

셋째, 경기 과열에 대한 우려이다. 최근의 소비 증가와 증시 활황세가 일종의 거품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최악의 경우 대내외적인 충격 발생에 따라 거품이 빠질 경우 실물 경제가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향후 공급 물량이 많아 수급을 통한 자연스러운 속도 조절이 예상되며 증시 자금이 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과 설비투자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증시 상황을 너무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문제는 지금의 경기 호전 상황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섯 가지 관건이 있다. 우선 증시 활황이 실물 경제의 회복에 도움을 주느냐. 둘째, 제조업의 생산성 증대와 고부가가치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느냐. 셋째, 시중 여유자금과 실물 투자와의 연계 고리가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느냐. 넷째, 수출이 활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환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느냐. 끝으로 구조조정이 원만하게 마무리되어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느냐. 이같은 요인들은 단순히 전망 차원이 아닌 실천의 대상이기 때문에 실현 여부를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한 시기이다.

정순원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