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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카네이션 없는 「스승의 날」

입력 | 1999-05-11 19:26:00


사제간의 순수한 정을 나누는 스승의 날에 학교가 문을 닫는 초유의 일이 서울에서 벌어진다. 15일 스승의 날을 가정체험 학습일로 정해 휴교하기로 한 서울 초등학교교장회의 결정 때문이다. 교장회가 내세운 휴교 이유는 과거 스승의 날에 자주 있었던 촌지와 선물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할 학생들이나 축하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모처럼 함박웃음을 지어야 할 교사들 모두가 이번 교장회 결정으로 각자 집에서 하루를 보내게 됐다.

이날 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보낼까. 공연히 오해를 사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교사도 있을 터이고 스승의 날에 학생들을 만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교직을 택한 것을 후회하는 교사도 있을지 모른다. 학생들은 어떨까. 일년에 하루뿐인 스승의 날에 스승을 뵙지 못하는 데 대해 송구스러운 감정을 갖는 학생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스승의 날이라면 오히려 없애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에서 이번 결정은 신중한 판단이 아니었다고 본다.

교육적 측면에서 학생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결정에는 문제에 부닥쳤을 때 정면 돌파하지 않고 일단 피하고 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누구보다 학생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교장들로서 당당하지 못한 태도다. 체벌 촌지문제 등과 관련해 교권 추락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은 마당에 이런 결정은 교권을 다시 세우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외에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일선 교사들이 최근 교육정책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알려진 그대로다. 이번 결정이 발표되던 날 마침 교원단체총연합회는 그동안 벌여온 교육부장관 퇴진서명운동 결과를 공개했다. 전체 교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2만명이 서명에 동참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결정은 이처럼 뒤숭숭한 교단 분위기에서 나온 터라 뭔가 얽힌 속사정이 있을 법하다.

그 중 하나는 정부가 자꾸 교사의 촌지수수 문제를 거론하니까 연중 촌지가 가장 많이 오간다는 스승의 날에 아예 학교 문을 닫는 ‘시위’적인 방법을 택했을 가능성이다. 만약 이같은 정서가 은연중 이번 스승의 날 휴교 결정에 작용했다고 한다면 이 역시 바람직한 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교육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스승의 날은 원래대로 복원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교육당국과 교직사회가 하루빨리 상호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