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16세기부터 스위스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나는 20여년간 이 나라에서 사업을 한 경험을 토대로 졸저 ‘나는 네덜란드의 개성상인’을 썼다.
네덜란드에 살면서 늘 감탄하는 것은 어린이에게 장사 기술을 가르칠 만큼 상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민성이다. 수 백년 동안 부를 유지하고 세계무역을 제패한 이 나라의 국제 상인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한 훈련과 실습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매년 4월말이면 여왕 탄신일을 기념하는 연휴가 시작된다. 이 연휴에는 모든 상점이 철시하고 거리는 어린이들이 장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된다.
어린이들은 장난감 인형 자전거 등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한다. 상품을 잘 팔기 위해 적정가격을 매기고 1센트 1길더의 이익을 더 보려고 최선을 다해 흥정을 한다. 물건을 사주는 어른들도 상대를 어린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물건의 흠을 잡고 값을 깎는다. 미래의 국제 상인을 키우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들은 단 한푼의 돈을 벌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경험한다. 이 때부터 자기의 몫과 남의 몫을 가르는 방법, ‘더치 페이’를 배운다. 더치 페이는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방식이지만 직역하면 네덜란드식 계산이라는 의미다.
중학생이 되면 남녀 불문하고 거의 신문배달을 시작한다. 미리 지도를 보고 가장 효율적 배달 코스를 연구하고 매일 새벽 5∼6시에 일어나 자전거에 신문을 가득 싣고 꽁꽁 얼어붙은 거리를 달린다.
광고가 많은 토요일판은 페이지가 많아 체구가 왜소한 어린이는 자기보다 더 큰 부피의 물량을 배달한다. 그렇게 끙끙대며 배달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학교로 달려간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창고에서 물건을 나르고 매장에서 물품을 정돈하거나 고기를 써는 등 힘든 일을 하지만 한달 내내 일해봐야 3백길더(18만원) 남짓 받는다. 노동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이지만 열심히 일한다.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계산방법과 재고관리, 매장의 상품관리 등 경제 활동의 기초를 배운다.
대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의 활동 범위가 국제적으로 넓어진다. 학점 따기가 어려워 학기중에는 거의 일을 할 수 없지만 방학이 되면 독일 프랑스 영국의 호텔 등에 어학연수를 겸해 아르바이트를 나간다. 그 곳에서 생생한 외국어를 배워 졸업할 무렵에는 최소한 3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한다. 외국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숙객들에게서 각 나라의 문화와 예절도 함께 배우게 된다.
네덜란드에서 물건을 살 때 유럽인들은 모국어를 사용한다. 독일인이 오면 점원은 독일어로 상냥하게 설명한다. 나치의 점령으로 고난을 당해 반독 감정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프랑스인이 프랑스어로 질문하면 프랑스어로 답변한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프랑스의 통치를 받았다.
영국인이 물으면 다시 영어로 답한다. 네덜란드인의 토플 성적은 항상 세계에서 제일 높다.
이런 나라가 오늘날 세계 유수의 금융 유통업체를 키워낸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경제교육을 중시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고 가난한 나라를 많이 도와주는 청교도 정신을 지니고 산다.
박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