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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이규민/DJ와 애덤 스미스

입력 | 1999-05-12 19:34:00


사례1:서울에서 일하는 한 외국인 임원은 휴일 아침 골프장을 찾아가다가 낭패를 보았다. 7㎞를 가는 동안 갈림길은 계속 나오는데 안내표지판은 통틀어 세개에 불과해 엉뚱한 곳에서 한시간을 헤맸다는 것. 골프장측에 항의했지만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행정당국이 안내판을 세개 이상 세우지 못하게 한다”는 대답을 듣고는 할 말이 없어졌다.

사례2:서울 강남의 한 주유소는 사무실 건물안에 서구식 편의점을 차리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안전관리를 위해 15㎡(약5평)이상의 사무실을 두어야 한다는 소방관련 법률때문에 편의점을 차릴 공간이 없어졌기 때문. 건물은 책상 두개만 덩그러니 놓인 채 놀고 있다. 사무실 넓이와 주유소 안전관리가 무슨 관계냐고 항의해도 소방당국은 ‘법대로’만을 주장한다.

정부가 거창하게 규제완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일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영 딴판이다. 기업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외국기업에는 후하게 풀렸지만 내국기업들의 족쇄는 더 강하게 채워지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 예로 국내기업에는 계열 금융회사가 갖고 있는 관계사 주식의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돈을 모아 투자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외국기관투자가들은 본국에서 개인돈을 모아 국내기업의 주식을 사더라도 당당하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내기업이 외국투자가들로부터 무방비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당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지만 당국은 막무가내다.우리나라의 경제법률은 전체의 72%인 6백69건에 달하고 이 가운데 42%가 규제성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경제법률이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그나마 규제성은 두나라 모두 7% 안팎에 그친다.

유독 우리나라에 규제성 법률이 많게 된 것은 물론 정부와 기업 쌍방의 책임일 수 있다. 벌이 먼저인지 꽃이 먼저인지의 논쟁처럼 보이지만 기업경영이 변칙으로 향하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가 생겼을 수도 있고 정부가 불순한 동기에서 규제라는 그물을 치니까 기업이 빠져나가려고 변칙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통치시대, 정부주도형 경제개발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규제가 양산됐다는 사실은 정부가 권한강화의 수단으로 규제를 활용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규제완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작금의 상황도 당국자들의 기득권 지키기와 유관하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손아귀에 권한이 많으면 많을 수록 부패의 소지는 더욱 커진다. 국가부패지수가 그렇게 낮다는 일본에서 대장성 간부들이 독직혐의로 줄줄이 끌려가던 사건은 바로 규제를 바탕으로 한 인허가권과 부패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물며 우리나라에서야.

근대 경제학의 시조라는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규제를 ‘정부가 대중에게 행하는 사기와 횡포’라고 규정했다. 정부주도의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창하던 그의 눈에 비친 규제는 그런 성격이었다. 김대중대통령의 이른바 DJ노믹스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으로 요약된다. 시장경제는 경제활동에서 개인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될 때 성립한다. 그런 면에서 애덤 스미스의 경제자유주의와 DJ노믹스는 외견상 유사점이 있다. 김대통령이 만일 DJ노믹스를 실천하겠다는 진실된 의지를 보이고 싶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시장에서 규제해제를 통해 경제 자유주의를 실천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규민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