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영(崔淳永) 리스트」는 과연 있는가, 없는가. 검찰은 절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최순영 리스트’는 재산 국외도피 혐의로 구속된 최순영신동아그룹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이 뇌물을 준 사람의 이름을 진술하고 검찰이 이 진술을 토대로 해당 인사를 하나씩 구속하는 과정에서 소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미 구속된 이정보(李廷甫)전보험감독원장과 이수휴(李秀烋)전은행감독원장, 홍두표(洪斗杓)한국관광공사사장 이외에도 검찰이 다른 거물급 수뢰 인사들의 명단을 확보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엊그제 홍두표씨 구속 이후 정치권과 관계 인사 10여명의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소문은 빠르게 번지고 있다.
검찰의 부인과 상관없이 ‘최순영 리스트’가 세간에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뿌리 깊은 뇌물관행 때문일 것이다. 최회장은 재벌그룹 회장으로서 정계 관계 언론계에 폭넓게 대외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회장은 국세청의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과 관련해서도 한나라당에 5억원을 제공했다고 구체적인 전달방법까지 설명하며 진술한 바 있다. 이런 최회장에 대해 항간에서 다른 권력 주변의 인사들에게도 뇌물을 제공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온갖 억측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금까지 구속된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구 여권 인사라는 점을 들어 최회장이 현 여권 인사들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한편으로 검찰 수사에 뭔가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리스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검찰이 누구는 잡아넣고 누구는 봐주는 게 아니냐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현 단계에서 파문을 잠재우기 위한 열쇠는 일단 최회장과 검찰측이 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선 최회장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뇌물을 준 명단을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 검찰 역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사안인만큼 ‘수사과정에서 우연히 불거진 개인비리’라는 식의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잇따라 터져나온 지도층의 비리에 민심은 차갑기 그지없다. 요즘 정부종합청사 주변에는 “장관 도지사 국회의원들은 집안에 돈을 쌓아놓고 사는데 우리만 월급갖고 살란 말이냐”는 내용의 괴문서가 나돌아 하위직공무원들의 가슴을 긁어놓고 있다고 한다. 이런 민심을 헤아리는 차원에서라도 검찰은 진실 규명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