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보험아줌마’의 하루는 너무 짧다. 살펴봐야 할 이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보험아줌마로 통하는 이기순(李基順·49·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씨. 이씨는 한달에 4백만∼5백만원을 번다. 남들에 비해 많은 수입이지만 늘 돈이 모자란다. 자신에게 쓰는 것은 고사하고 지방대학에 다니고 있는 외아들(25)에게도 매달 30만원 이상 보내지 않는 ‘짠 엄마’인데….
이씨는 벌써 10년 넘게 가난한 학생 3,4명을 선정해 학비를 대주고 있다. 그동안 이씨의 도움을 받은 학생이 50여명도 넘는다.
이씨는 또 10년째 ‘어머니’를 여덟분이나 돌보고 있다. 주변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이다. 교대로 매일 오전5시면 집으로 찾아가 모시고 목욕탕에 간다. 깨끗이 씻겨드리고 하루 용돈도 드린다.
‘괄괄한’ 이씨에게 요즘 걱정이 생겼다. 평소 돌보고 있는 3명의 하반신장애인 중 한사람이 최씨(40)가 엉덩이살이 썩어 병원에 입원한 것. 5백만원에 가까운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수소문해봤지만 돈마련이 쉽지 않다. 최씨의 얘기를 하는 이씨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찼다.
이웃들을 돌보고 난 뒤 시간이 남으면 이씨는 감천장(양로원)과 동광원(보육원)을 찾는다. 이 곳에서 봉사활동을 한 지도 어느덧 20여년에 가깝다.
이씨의 이웃에 대한 봉사의 이면에는 목숨과도 같은 약속이 하나 있다. 남편과 결혼을 앞두고 맺은 약속.
이씨는 4세위인 남편과 중매로 만났다. 당시 이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집에 있었고 남편은 일용직 노동자였다. 둘다 가톨릭 신자였던 부부는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평생을 남에게 봉사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남편은 89년 1월 ‘약속’만을 남기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버렸다. 아들을 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대한생명에 입사, 보험설계사를 시작했다.
이씨는 그동안 몇차례 ‘보험왕’을 차지해 벌어들인 수입으로 3년전 경기도 외곽에 7백여평의 양로원 부지를 마련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쉴 수 있는 무료양로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올해까지 8천만원을 또 모았다. 그러나 평생 소원이던 웬만한 복지시설을 갖추려면 15억원은 있어야 한다.
이씨는 요즘 후원자를 찾고 있다. 후원자만 나서면 자신은 양로원의 주방에서 노인들을 위해 밥을 짓고 싶단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