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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권태준/평화와 공존의 문화

입력 | 1999-05-23 19:59:00


유엔은 97년 총회에서 2000년을 ‘국제 평화의 문화의 해’로 의결 선포했다. 한국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유엔의 여러 기구에서는 요즘 그 준비에 한창이다. 그 가운데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이를 세계적 ‘운동’으로 펼쳐나가려 하고 있다.

▼「경쟁문화」의 보편화 ▼

20세기의 마지막 해를 ‘평화의 문화의 해’로 정한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 한 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살상과 문명 파괴를 초래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을 포함한 이른바 냉전이라는 치열한 전쟁이 있었던 1백년이었다. 국민국가 민족국가 체제가 완숙되는 단계였고 따라서 그들간의 각축이 치열했으며, 이어서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물게 뚜렷한 정치이념이 세계를 양분해 갈등하던 세기였기 때문이다. 이렇던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를 여는데 ‘평화의 문화’를 내세움은 참으로 적절한 일이다.

게다가 세계에 바야흐로 ‘경쟁의 문화’가 모든 곳, 모든 면에서 거침없이 보편화돼가고 있는 때이니 말이다. 앞으로 점점 더 널리 그리고 깊이 번져나갈 세계화 과정의 중심축은 기술 경제 체제인데 그 지배적 게임의 규칙이 다름 아닌 경쟁이다. ‘만인(萬人) 대 만인’, 만국(萬國) 대 만국의 경쟁의 세기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경쟁의 문화는 갈등의 문화, 전쟁의 문화보다 좀 덜 불안하긴 하다. 경쟁이란 경쟁하는 당사자간에 그 게임의 규칙에 대한 동의가 있기에, 진 자가 졌음을 자인(自認)함이 보통이고 또 누구도 모든 것을 항상 잃기만 하는 게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야흐로 전개되고 있는 세계화 마당에서 ‘만인 대 만인’의 경쟁은 몰인정하지만 공평무사한 시장법칙에 따른 것이어서, 그 때문에 누가 누구를 탓하여 전쟁을 일으키기는 좀 부끄러울 터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처럼 몰인정한 경쟁규칙은 불가피하게 냉엄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을 정당화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이 경쟁규칙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과 집단, 지역과 그 삶의 양식을 열등한 존재로 치부하는 문화가 만연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또다시 서로 미워하고 의심하는 세계와 나라가 되어 머지않아 누군가 걱정하는 바와 같이 그야말로 ‘문명의 충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평무사한 경쟁의 마당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타인 타국 타인종 타문화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범지구적 문화가 절실하다. 이런 의미의 인류 보편적 문화야말로 ‘평화의 문화’라고 함이 가장 적절하다.

평화를 국가간의 약속이나 힘의 균형 문제로 취급하지 아니하고, 그 문화의 전파 또는 토착화의 문제로 보려는 시도 또한 시대적으로 적실(適實)한 일이다.

▼코소보사태의 교훈 ▼

앞날의 세계적 갈등은 국민 민족국가간의 주권(主權)적 이념적 갈등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종교 인종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불신 미움 배척등으로 인한 것일 게다. 이런 갈등은 보다 인간적인 만큼 더욱 처절할 수 있다. 요즘 한창 벌어지고 있는 ‘코소보 전쟁’을 보라.

이처럼 처절한 ‘마음의 싸움’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삶의 양식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를 심고 기르는 일이 절실하다. 이런 ‘평화의 문화’ 배양은 비단 세계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다. 더욱이 이 땅에서처럼 오랫동안의 냉전 분단으로 인한 지역간의 불신 같은 것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결국 사람들 사이의 불신 미움 따돌림 성향을 순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 세기 우리네처럼 민족 내부 갈등이 심했던 나라에서 ‘평화의 문화’가 일상적 삶의 양식이 된다면 다음 세대에 우리는 정녕 평화의 세계적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최근 ‘새천년준비위원회’가 그 사업계획의 주제를 ‘평화’로 정한 것도 시의 적절하다. 다만 이제 나라 안팎의 평화구축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시작하여 일상적 삶의 양식으로, 나아가 ‘문화’로 승화되어야 할 때임을 이해하여 그런 일에 앞장서 주길 바랄 뿐이다.

권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