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색 투피스 차림 고정희(高貞姬)씨는 도무지 서른두살 주부로 보이지 않았다.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에 수줍어하는 듯한 태도.가녀린 소녀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외모와 달리 그는 교보생명에 입사한지 반년만에 억대 수입을 올린 ‘슈퍼 생활설계사’다.
“남편 일이 잘 안돼 빚을 5천만원쯤 졌어요. 그걸 갚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책 외판원으로 나섰죠. 그때도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책 가방이 너무 무거웠어요”
힘들어하는 아내를 안쓰러워한 남편이 “짐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보험일이 더 낫겠다”고 권유해 고씨는 작년 6월 ‘종목’을 바꿨다. 그리고 10개월,
그가 일하는 지점 벽에 붙은 개인별 실적표에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 고씨의 그래프는 단연 돋보인다. 그 수직상승 속도만큼 수입도 비례했다. 첫달 1백30만에서 달마다 두배 이상씩 ‘점프’를 거듭했다. 지난달 급여는 무려 2천1백만원. 생활전선으로 내몰았던 빚도 깨끗이 청산했다.
“아무래도 보험 영업 일이 제 체질인가봐요.”
고씨는 간단히 말했지만 성공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부지런함과 열정, 치밀한 영업전략의 결실이었다.
고씨가 타깃으로 삼은 고객은 대부분 의사들.수입이 많아 매력적이지만 ‘개척’이 쉽지 않은 까다로운 고객이다.
예상대로 처음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의사 모임에 불쑥 찾아갔다가 “웬 잡상인이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많이 울기도 했지만 입술을 깨물고 ‘전략’을 연구했다. 계약을 한 의사에게 “동료분들을 소개해달라”는 식으로 자꾸 안면을 넓혀 나갔다. 저녁이나 휴일에 열리는 의사 세미나는 빼놓지 않고 열심히 찾아다녔다.
더러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솔직하고 진지한 고씨의 자세에 차츰 하나둘씩 관심을 보였다. 모임에서 얼굴을 익힌 다음에는 2,3일내로 반드시 병원을 찾아가 부딪쳤다.
부지런히 만나고 연구하다 보니 같은 의사라도 일반의와 치과의 한의사 간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 한의사를 만나는 날은 리듬을 잃지 않으려 하루종일 한의사만 상대하는 식으로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쓴다.
병원에 가지 않는 날은 고객에게 보내주기 위해 신문의 금융기사를 스크랩하는 등 자료 준비로 바쁘다. 밥먹는 시간이 아까워 빨리 먹는 습관이 붙는 바람에 걸핏하면 체하는 ‘직업병’을 얻었을 정도.
“지금은 의사선생님들과 무슨 얘기라도 다 나눌 만큼 친해졌어요. ‘누가 보험 하나 새로 들 모양이던데…’라고 살짝 ‘제보’도 해주지요”
‘인간적인’ 관계로 맺은 고객들이어서 고씨의 고객은 중도해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험유지율이 98%나 된다.
“생활은 풀렸지만 아이들에게 잘 못해주는게 걸려요…. 그래도 벌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일해야죠”금새 마음을 다잡은 듯 활짝 웃으며 고씨는 노트북PC 가방을 어깨에 단단히 맸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