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직장도 없이 떠도는 스물한살의 청춘.’ 어쩐지 식상하다. 지향없이 섹스와 마약에 탐닉하는 젊은이들의 방황을 스케치한 청춘 영화들이 진부할 정도로 많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29일 개봉되는 프랑스 영화 ‘천사들이 꿈꾸는 세상’은 90년대 청춘영화의 유행과 궤를 달리한다. 제목의 이미지와는 달리 어둡고 슬픈 이 영화에는 현란한 기교도,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공격도 없다. 대신 힘겹게 부대끼며 세상과 관계맺는 가난한 두 여자의 고된 삶이 가감없이 펼쳐진다.
밋밋할 수도 있을 두 여자, 이자와 마리의 삶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은 여배우 엘로디 부셰와 나타샤 레니에. ‘천사들이 꿈꾸는 세상’은 이들 배우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는 동갑내기(26살)의 두 배우에게 공동 여우주연상을 헌납했다.
이자 역을 맡은 프랑스 여배우 엘로디 부셰는 에릭 종카 감독이 “그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을 만큼 배역에 적격이다. 벼랑끝에 몰린 듯 각박한 생활에도 이자는 삶을 긍정하고 타인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줄 안다.
그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자의 아픈 과거를 표현하기 위해 한쪽 눈썹의 중간을 밀어 흉터자국을 내자고 감독에게 제안했다고. 꾀죄죄한 모습의 이자를 연기하기 위해 촬영기간동안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았다는 후문.
반면 벨기에 여배우 나타샤 레니에가 연기한 마리의 세상에 대한 반응방식은 냉소적이다. 바람둥이에게 매달리는 자신을 염려하는 이자에게 “난 네가 꿈도 못꿀 행복을 잡았어”하고 쏘아붙인다.
그는 때론 천박하지만 안쓰러운 마리의 집착과 좌절을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표현했다. 촬영현장에서 감독과 자주 다퉈 늘 화가 난 채 연기했다지만 그런 기분은 마리의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졌다.
엘로디 부셰는 13살때부터 모델로 카메라앞에 선 프랑스의 정상급 모델이자 배우. 반면 나타샤 레니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신인급이다. 그러나 두 배우는 이 영화로 ‘신데렐라’가 됐다. 엘로디 부셰는 조만간 할리우드 영화 ‘채식주의자를 쏴라’에 출연할 예정. 나타샤 레니에는 프랑스 영화 ‘범죄 커플’에 출연한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