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이 흥행에 참패했는데도 연출 제의가 쏟아지고 곧바로 두번째 영화를 만든 감독. 현재 상영중인 ‘간첩 리철진’을 연출한 장진(29)은 숱한 신인 감독들이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진 90년대에 분명 예외적인 감독이다.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98년)과 ‘간첩 리철진’ 단 두 편의 영화로 그는 충무로에 성공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서울에 내려와 온갖 고생을 겪는 간첩의 이야기를 그린 우화 ‘간첩 리철진’은 15일 개봉후 지금까지 서울에서 10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평단과 관객의 평가는 양극단으로 엇갈린다. ‘새롭고 기발하다’에서 ‘엉성하다’까지.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간첩 리철진’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맘에 안든다. 허술한 구석이 많다.‘영화는 이래야 된다’는 생각때문에 몸을 사렸다.”
―연출력이 ‘짱이다’ 또는 ‘꽝이다’라는 엇갈린 평가가 있다.
“누구도 내가 스스로를 씹는 것보다 더 독하게는 못할거다. 칭찬을 들어도 ‘닭살’이다. 그러나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건 이해하겠는데 감독 개인의 연출력을 놓고 좋다, 나쁘다, 또는 그만하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작품마다 새로운 룰을 만들겠다”고 한 적이 있다. ‘간첩 리철진’의 새로운 룰은 무엇인가.
“영화가 전달하려는 의미에 더 신경을 쓴 탓에 표현 기교의 새로움은 덜한 편이다. 그러나 화면의 거친 입자, 카메라 들고찍기 등의 방법으로 일부러 깔끔하지 않게 만들려 노력했다. 픽션이지만 관객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당신이 전달하려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간첩은 분단현실이 만들어낸 가장 웃기는 ‘직업’이다.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져 버리고 오도가도 못하게 된 한 간첩의 고난을 통해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서울예대 출신의 그는 95년부터 연극 ‘허탕’ ‘택시드리벌’ ‘매직타임’ 등으로 극작과 연극연출에서는 이미 역량을 인정받은 감독.8월과 11월에도 두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세번째 영화는 영화사 시네마 서비스의 강우석 감독이 제작을 맡기로 했다. 구체적인 것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네번째부터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승부하는 저예산 독립영화를 내 ‘꼬장’대로, 내 나이에 맞게 만들어볼 작정이다. 내가 놀 판은 내가 짜고 싶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