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서울 관악구 어느 인쇄공장에서 만난 지하운동가는 내게 “일본 사람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는 “똑같은 밥을 먹어도 한국 사람 같으면 ‘아, 맛있다!’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일본 사람은 왜 맛있는지, 재료가 무엇이며 조리법이 무엇인가를 탐구한다”고 일본인을 칭찬했다.
나는 그의 말에 무척 놀랐다. 한국 지식인들조차도 일본에 대해 망발을 많이 하던 시대였다. “대일무역적자는 일본이 착취하는 금액이다” “일본엔 배울 만한 문화가 없다” “일본은 아직 군사침략을 꿈꾼다”….
요즘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 부정이나 황당무계하고도 적대적인 인식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 한국인의 대일관(對日觀)은 부정적이다.
야간대학원에서 한국말을 배우는 일본 여성이 겪은 일이다. 밤늦게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남산 1호터널 중간지점에서 “난 일본사람이 싫다. 여기서 내려라”고 했다. 그는 “터널 밖에서라도 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는 여성을 억지로 내리게 했다.
서울의 일본계 기업에서 노조가 회사 현관에 일장기를 깔았던 일도 있다. 사원도 고객도 일본국기를 밟아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도 좋다는 발상일까. 반대 입장이라면 어떨까.
“고구려와 고려의 구별조차 못하는 일본 사람이 있다”고 비판하는 한국인에게 물어보니 그는 일본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한국도 일본도 역사를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 초등학생이 ‘일본놈’이라고 부르게 만드는 교육을 비판하는 한국 사람도 있다.
물론 아직도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불쾌한 일을 당하곤 하는 것을 안다.
나는 일본에서 일본을 비판한다. 역사 인식을 둘러싸고 보수파 국회의원과 7시간이나 논쟁한 적도 있다. “너는 한국인인가”라는 말도 들었다. 한국을 모르는 것이 일본의 약점이다.
50여년간 일본도 한국도 서로 사각지대에 있었다. 일본은 외면하려고만 하고 한국은 전쟁 전의 사악한 일본의 이미지를 50년간 고정시키려 했다. 현실의 일본을 보려고 하지 않고 ‘안다’는 착각속에 빠졌다. 한국의 일본비판은 날카로운 점도 많으나 왜 일본인들에게 설득력이 없는가.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란 말이 있다. 두 나라 모두 상대방을 모르고 자기 모습조차도 몰랐다. 상호이해 부족으로 일본과 한국 모두 진 것이다. 모두 패자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경제위기로 인해 구미에서 ‘아시아의 시대는 끝났다. 역시 서양이 뛰어나다’고 한다. 이래도 극동의 두 나라가 21세기에도 으르렁거릴 것인가. 세계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서로의 단편적 지식으로 상대방을 몰지각하게 비판해서는 안된다. 외모는 비슷하나 가치관도 습관도 다르다. 자기의 척도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출발하고 나서 공통점을 찾는 편이 좋다.
21세기는 양국이 협력해서 아시아 나아가 세계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지를 모색해야 할 시대이다.
미치가미 히사시
◆약력
△58년 일본 오사카 출생 △도쿄대 법학부졸업, 미국 하버드대 석사 △서울대 연수 △외무성 아시아국 경제국 등에서 근무 △98년∼현재 주한일본대사관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