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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묻는 방법따라 결과 「千의 얼굴」로

입력 | 1999-06-03 00:19:00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김태정(金泰政)법무부장관의 거취 문제와 관련,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결과를 인용한 점을 놓고 뒷공론이 무성하다.

대통령이 일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결과를 의사 결정의 중요 준거(準據)인양 언급한 것이 과연 적절한지, 김장관의 사퇴불가를 뒷받침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등의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통령이 인용한 여론조사는 청와대가 월드리서치사에 의뢰해 지난달 30일 전국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이 조사에는 국정수행 평가 등 10여개 항목이 있었으나 청와대는 이 가운데 ‘고급옷 로비 의혹사건’관련 3개항에 대해서만 요약본을 만들어 모 언론사를 통해 공개했다.

우선 ‘김태정현법무장관 부인에 대한 고액의 옷 로비 사건은 현재 수사중에 있다. 김장관이 향후 거취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문항의 경우 ①사건진상과 관계없이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②밝혀질 사건진상에 따라 향후 결정돼야 한다 ③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으므로 장관직을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등의 3개 답항이 제시돼 있다.

문항에서부터 ‘수사중’임을 상기시킨 이 설문은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②를 모범답안으로 ‘찍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응답자의 57.1%가 ②를 선택했다(①은 33.3%, ③은 8.8%).

결국 청와대는 ‘유리한 부분만 부각시켜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여론조사를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자초한 셈이다.

○…청와대가 여론조사를 지나치게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활용하고 해석한다는 지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의 경우 일반 여론조사기관은 ‘매우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 ‘그저 그렇다(보통이다)’ ‘잘못하고 있다’ ‘매우 잘못하고 있다’는 5점 척도를 쓰지만 청와대는 ‘그저 그렇다’는 답항을 뺀 4점 척도를 쓰고 있다는 것.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한국사람들은 대통령에 대해 ‘잘못한다’고 말하길 꺼리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4점 척도를 쓰면 5점 척도보다 ‘잘한다’는 응답이 20∼30% 높게 나온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점에서 청와대 여론조사는 문항 설계부터 민심을 왜곡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

○…김대통령이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한 데 대해 “이 사건의 경우 여론이 어떤지는 여론조사 이전에 당연히 체감되는 것인데 굳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는 것 자체가 모양이 우습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그런식으로 할 것 같으면 김법무장관 유임도 여론조사를 해보고 결정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