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의 음유시인」미셸 징크 지음 쉐이출판사▼
최근 프랑스 출판가에 화제를 뿌린 이 책은 35편의 중세시대 콩트를 개작한 모음집이다. 저자는 파리 소르본대 교수를 거쳐 몇년 전부터 프랑스 학계 최고 명예의 전당인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중세프랑스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 모음집은 한편이 5쪽에서 10쪽 미만이다. 성당의 조각가나 일정한 거처없이 떠도는 음유시인이 자신들의 예술과 직면하여 겪는 고통, 장님 벙어리 걸인에게 일어난 기적, 우연히 정사장면을 목격했다가 비밀이 누설되지 못하도록 혀가 잘린 목동이 원한에서 용서로 나아가는 과정, 기사의 헌신적 사랑, 성직자들의 내면적 갈등과 투쟁 등이 수록됐다. 중세인들의 삶 죽음 고통 사랑 소망 구원에 대한 인식을 현대독자들이 쉽게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구성해 놓았다.
중세는 로마제국의 몰락(476년)에서 터키제국의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년)까지의 약 1천여년을 지칭한다. 그리스 로마 문명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으로 그 문화가 형성돼 서양문명의 근원과 토대를 이룬 시기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특히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중세는 ‘이성과 예술의 동면(冬眠)’ ‘맹목적 광신주의’ 등 ‘암흑의 시대’로 불려왔다. 게다가 급속한 과학의 발전과 물질만능주의가 생활방식과 가치관에 미친 변화로 인해 중세는 현대인에게 더욱 더 먼 과거가 되어 버렸다.
프랑스에서는 이처럼 왜곡되고 경시되던 중세의 문화가 약 40년전부터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 각 방면에서의 활발한 연구로 재평가되고 있다. 필사본을 라틴어 혹은 중세어와 현대 프랑스어 두 언어로 편찬할 뿐만 아니라 일반독자층의 이해폭을 넓히기 위해 저렴한 가격의 현대 프랑스어판 포켓북도 다량 출판한다. 또 이 모음집처럼 현대인의 감수성에 호소하면서 중세문화의 정신적 정수를 전달하기 위해 작품 내용을 개작하는 작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노력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욕망의 표현이 아니라 전통과 단절된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들의 문명의 뿌리를 앎으로써 현재의 정신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강화시키려는 의지의 소산인 것이다.
조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