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출판의 꽃은 ‘기획’이다. 저자의 명성 위주가 아닌, 편집부의 아이디어 만으로 치밀하게 기획되고 출판되는 책은 종종 출판시장이라는 황금어장에서 대어를 낚는다.
또한 지성사의 흐름을 정리해내는 굵직한 역작을 만들어 내는 것도 기획출판이다.
한국출판인협의회가 1일 청소년부문 ‘이달의 좋은 책’으로 선정한 ‘세계사신문2’(사계절)는 기획출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과거의 역사를 오늘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전달하는 이 책은 청소년은 물론 대학생 성인독자에게도 대중적 역사서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역사신문을 만들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와 독립신문 원본을 보게 됐지요. 1면톱에도 국제뉴스가 들어가는 등 요즘 일간지보다 더 세계화된 신문이더라고요.”
팀장 김성환씨는 ‘세계사신문’의 제작동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역사교사들이 참여했던 역사신문은 95년부터 97년까지 6권이 제작돼 국민학생에서부터 직장인까지 총 30만권가량이 팔린 화제작.
‘세계사신문’제작을 위해서도 특별 ‘프로젝트팀’이 꾸려졌다. 역사학전공자 외에도 보다 다양한 글쓰기를 위해 사회평론 ‘길’ ‘샘이깊은물’ ‘미디어오늘’ 등에서 일했던 현직 기자와 편집자, 삽화가 등 6명이 참여했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사계절출판사 지하골방이 이들의 작업실.
“출판계에 ‘역사의 대중화’바람이 분지는 꽤 됐지만 신문의 형태만큼 대중적으로 친숙한 형태는 없을 겁니다.”(팀원 이은홍)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 △종합면 △서양면 △동양면 △문화면 등 4면으로 구성된 신문에는 ‘200년 십자군전쟁 막내리다’ ‘흑사병 유럽 급습’같은 스트레이트기사는 물론 ‘현장르포―몽골제국의 동서교역 현장’ 등의 다양한 기사가 실려있다.
취재수첩 독자투고 휴지통 인터뷰 대담 사설 등 신문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글쓰기가 자리잡고 있다. ‘망원경’ ‘타임머신’ 등 시공을 초월해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비교하는 코너는 인기칼럼.
사설을 위한 논설회의, 취재계획을 정하는 기획회의, 각 기사의 크기를 정하는 편집회의는 신문사 편집국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른다.
“사설을 쓰기 위한 논설회의때는 얼마나 치열한데요. 세계사신문의 역사서술 방향의 가장 큰 특징은 서구중심의 사관을 지양하고 정치적 사건만이 아니라 문화 생활사도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이지요.”(팀원 최광열)
실제로 13∼18세기를 다룬 ‘세계사신문2’에서는 몽골제국과 이슬람문명권의 역사를 서구와 동등하게 취급하는 등 세계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기사형식의 역사소개는 자칫 역사를 너무 단편적으로 다루고 심층적인 이해를 유도하기에는 형식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