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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선/미국]대학교수 고액연봉 스카우트 활발

입력 | 1999-06-08 20:06:00


미국의 인도 불교학계에서 저명한 그레고리 쇼펜 교수는 최근 오스틴 텍사스주립대에서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한 스탠퍼드대로 옮겼다. 수년 전 텍사스주립대도 그를 데려오기 위해 상당한 연구 기금과 고액 연봉을 제시했다. 계속 주목할 만한 연구 실적을 내놓은 쇼펜에게 스탠퍼드와 UCLA에서 다시 스카우트의 손길을 뻗쳤다. 두 대학이 경쟁적으로 제시하는 조건을 놓고 저울질하다 스탠퍼드대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다른 대학들과 비교가 안될 만큼 높은 연봉과 좋은 연구 환경으로 뛰어난 교수들을 데려온다. 배우자 취업이나 주택, 자녀교육비까지 조건으로 제시한다. 교수가 열심히 연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특전’이나 ‘대접’이 연구 활동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연봉은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상품적 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따라서 연봉 또한 수요와 공급에 따르는 시장 원리가 적용된다. 대학은 재정 능력에 따라 ‘비싼 상품’을 사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교수는 자신의 상품적 가치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이다.

연봉의 시장 원리는 전공 분야별로도 적용된다. 인문학 교수의 연봉은 이공계 분야 보다 평균적으로 적다. 이공계 분야는 기업과 연구소 등의 수요가 많아 대학이 적어도 그 수준과 비슷하게 연봉을 지불해야만 우수 인력을 유치할 수 있다. 이공계 분야 교수들은 기업 등에서 프로젝트를 따옴으로써 대학에 재정적으로 보탬을 주는 경우도 많다. 경영학 교수의 연봉은 대체로 경제학 교수의 연봉보다 많다. 경영학 분야는 투자 회사나 민간 기업에서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연봉은 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같은 학과 같은 전공 분야 교수들 간에도 불가피하게 차이가 난다. 따라서 연봉을 얼마 받느냐 하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는 프라이버시에 속한다.

미국 대학에서 연봉제가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미국 대학의 넓은 시장과 전출, 이사 등 유동적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미국인들의 생활 양식이 있기 때문이다. 학연이나 지연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큰 ‘시장’이 있기 때문에 연봉제의 기초가 되는 연구 업적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

연봉제의 이면에 있는 철저한 개인주의와 그리고 자본주의적 가치관 같은 것은 한국 사회의 큰 변화의 흐름과 어느 정도 일치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타 대학으로 전출이 그리 간단하지 않을 뿐더러 넓은 ‘시장’이 없어 연봉제가 ‘연구 장려’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자칫 교수들의 채용 조건을 악화시키는 제도가 될 수도 있다. 제한된 ‘시장’은 결국 불공정 거래와 불평등 계약을 낳는다. 한국의 연봉제는 미국과 다른 한국 사회의 문화나 전통을 잘 고려해 실정에 맞는 시행 방법과 관행을 만들어 가야 한다.

연봉제는 ‘제로 섬’ 게임이 아니다. 연구 실적이 적은 사람의 급여를 줄여 연구 실적이 좋은 사람에게 더 주는 것이 아니다. 연봉제는 교수의 잠재력에 대한 투자이고 연구 업적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결국 돈을 더 들여야 하는 제도이다.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연봉제를 도입하려면 교육부나 사학 재단은 더 쓸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연봉제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조성택(美뉴욕주립대 교수·인도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