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이제 겨우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 백두의 춘색이 가장 도도해지기는 6월말∼7월초. 단 열흘 남짓이다. 천지 아래 백두산 고산지대의 봄은 각별하다. 촌애기 귀밑머리 같이 보드라운 들꽃들이 짧고 아쉬운 새 봄에 쉼없이 피고 지며 능선을 물들이는 백화만발의 봄이다. ‘울긋불긋 꽃대궐 차릴’ 백두산의 서쪽능선으로 들꽃여행을 떠난다.》
‘걸어서 천지까지’.
한반도 남쪽의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음속에 새겨 보았을 다짐이다. 그래서 찾아간 백두산. 그러나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관광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에 실려 광장 같은 천문봉 주변에 올라 기념사진이나 찍고 돌아오는 맹숭맹숭한 ‘천지관광’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7,8월 장마철에 갔다가 폭우나 안개, 비구름에 갇혀 천지와 주변 16연봉이 빚어내는 파노라마 장관도 목도하지 못한 채 하산하는 비통함을 느꼈던 이도 적지 않았다.
95년 장백산국가급자연보호구(한국의 국립공원관리공단)가 백두산 서쪽능선으로 오를 수 있도록 허가, 백두대간의 정수리를 두 발로 걸어 오르는 감격도 누리게 됐다. 당시 들꽃 트레킹코스를 국내에 첫 소개한 최희주씨(47·백두산 자연탐사기획 대표)는 “해발 1500m 야생화군락지(일명 고산화원)에서 청석봉 정상(해발 2662m)까지 서쪽능선은 고도마다 다른 들꽃으로 뒤덮인다”면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라고 말했다.
연못 왕지의 붓꽃 군락지를 지나면 연분홍빛 꽃으로 뒤덮인 난(蘭)군락지에 이른다. 주변은 온통 들꽃 세상이다. 진분홍의 개불알꽃, 샛노란 날개하늘나리, 귀부인처럼 우아한 큰원추리 등등…. 사스래나무의 원시림 군락지 사이로 듬성듬성한 풀밭에는 들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능선을 오르다 보면 사스래나무 군락이 사라지고 대신 키 작은 관목지대(높이 25㎝ 내외)가 나타난다. 수목생장한계선(해발 1700m)을 지난 것이다. 백운봉 아래 한허계곡에 들어서면 짙은 보라색의 하늘매발톱이, 금강폭포 능선에는 노란 금매화가 예쁜 꽃망울을 터뜨린채 바람에 살랑인다. 이제 능선만 오르면 청석봉 정상. 잔설이 희끗희끗한 봉우리 뒷편의 경사면에 노란 두메양귀비와 만병초가 활짝 꽃을 피운다. 들꽃의 질긴 생명력은 2500m 고지에서 돋보인다. 그 주인공은 청석봉 정상의 개감채.
백두산 들꽃이 펼치는 화려한 파노라마 풍치는 예서 그치지 않는다. 이 꽃이 질 쯤이면 저 꽃이 피면서 서쪽능선은 쉼없이 갖가지 색깔로 채색된다. ‘들꽃 축제’는 6월하순∼7월초의 열흘 남짓으로 짧다.
〈조성하기자〉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