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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심리학]눈은 편집증적 불신 상징

입력 | 1999-06-10 19:27:00


영화 퀴즈 하나. 다음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매트릭스’ ‘트루먼 쇼’ ‘다크 시티’ ‘오픈 유어 아이즈’….

최근 쏟아져 나왔던 이 영화들은 각기 다른 대륙에서 만들어졌건만 한결같이 자신이 처한 현실이 결국은 가짜 현실 즉 조작된 환영이었다는 것을 눈치채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의 생활은 TV 생중계를 위해 조작된 것이었고 ‘다크 시티’에서는 아예 외계인들이 날마다 가짜 기억을 주입해준다. 밀레니엄 무비의 선두격인 이 영화들은 인간의 기억만이 실재하는 전부이며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는 격언을 의심케하는 편집증적 세계관을 모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농축하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가 바로 눈이다. 일찍이 히치코크 감독은 영화 ‘사이코’에서 욕실의 하수구와 시체의 눈을 디졸브(한 장면이 사라지는 동시에 다른 장면이 시작되는 장면전환방식)시킴으로써 눈이야말로 모든 이미지들을 빨아들이는 관음증의 장소로 파악한 바 있다.

또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눈 그림이 나온다. 이는 출세를 향해 달리는 주인공 개츠비가 세상에 대해 품고 있는 무의식적인 불신과 경계를 단번에 나타내어 준다.

눈은 가짜 거울이며 어느 곳이든 이동 가능한 몰래 카메라이기도 하다. ‘트루먼 쇼’에서 빈번히 나오는 카메라는 변형된 눈의 이미지이다.

흔히 주변에 대한 경계나 주의 수준이 높은 편집증 환자들은 눈을 강조하는 그림을 그린다. 일례로 유학도중 자신을 해치려는 외계인의 음모를 피해 귀국했다는 한 환자는 다이아몬드 모양을 커다란 눈으로 바꾸어 그림을 그렸었다.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존재의 근원을 이루는 기억과 경험이 충돌하게 될 때 세상이 얼마나 거대한 음모와 미로의 장소로 변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이렇듯 관객의 불안과 불신을 담보로 하는 영화들이 증가한다는 것, 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휘발되어가고 비현실이 현실을 대체하는 사이버 문화의 홍수속에서 맞이하는, 세기말의 음울한 풍경화이기도 하다.

심영섭(영화평론가·임상심리학자) kss196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