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일간의 발칸전쟁에서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우선 손꼽히는 승자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미국이 공습을 주도한 만큼 유고의 항복은 곧 클린턴의 승리를 의미한다.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요구를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그의 승리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클린턴은 적잖은 비판도 받았다. 지상군 파병가능성을 너무 일찍 배제한 것은 경솔한 처사라는 지적도 많았다.
공습의 명분이었던 코소보주민 학살방지 실패와 잇단 오폭에 따른 민간인 피해도 그의 부담이다.
그런 점에서 ‘주연’ 클린턴보다 ‘조연’인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오히려 실속있는 승자일지도 모른다.
블레어는 전쟁성격을 처음부터 “유럽을 악(惡)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도덕적 군사캠페인”으로 규정했다. 분명치 않은 태도를 보이던 다른 유럽국 지도자들을 설득, 공습에 동참토록 함으로써 추진력과 리더십있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옐친은 국내 정치적 입지 약화와 경제난으로 거의 잃고 있던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을 상당히 회복했다. 공습초기에 흑해함대 출동을 거론해 군사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일깨웠다.
공습후반에는 발칸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중재자로서 외교적 정치적 역량을 과시하고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코소보해방군(KLA)도 이득을 보았다. 무장 게릴라인 KLA는 공습을 틈타 세력을 확장했다.
무능함을 드러낸 온건파 지도자 이브라힘 루고바를 대신해 알바니아계를 대변하는 세력으로도 떠올랐다.
최대의 패자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 그는 랑부예 평화안보다 훨씬 후퇴한 평화안을 받아들여 국내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게 됐다. 특히 그는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돼 있고 서방은 그의 퇴진과 유고재건을 연계하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10일 “밀로셰비치는 국내인기가 매우 떨어졌지만 당분간 살아남을 것”이라며 “유고 국민에게는 정치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도 패자. 유엔은 시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주도권을 뺏겼다.
아난이 천거한 코소보특사 카를 빌트 전 스웨덴 총리 대신 미국과 NATO회원국들이 추천한 마르티 아티사리 핀란드대통령이 서방측 중재자로 활약해 아난의 체면을 구겼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