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관리 전문’이라고 하는, 약간 생소한 직업에 종사하는 구본형의 저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생각의 나무)이 나온 것은 지난 해의 일. 그는 이제 변하지 않고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변하기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변한다는 것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뜻하는데, 이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수천년 농경 정주민으로 살아온 우리 문화 풍토에서 나온 이 희귀한 책에서 나는 떠돌이 수렵민, 혹은 유목민 옷자락의 바람 냄새를 맡는다. 누대의 족보를 껴안고 고향 땅 전답을 맴돌던 우리에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늘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수렵민이라면 새 사냥터를 찾아야 하고, 유목민이라면 새 풀밭을 찾아야 한다.
그는 농경민의 자손인 우리에게 익숙한 것과 이별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왜 그러는 것일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읽은 직후, 문학평론가 류보선교수(군산대)가 어딘가에 쓴 ‘친숙함은 인식의 장애’라는 글을 읽었다. 류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현재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죽음과도 같은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어떻게든 지금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인식의 위계 질서를 고수하려고 하는데, 이런 사유구조를 그는 ‘편집증적 일관성’이라고 부른다. 편집증적 일관성을 고집하는 사람은 새롭게 접하는 감각이나 경험을 확장시키는 대신 이를 축소시키고,자신의 위계 질서와 어긋나는 경험이나 현실을 목도하면 그 발생 원인을 탐색하는 대신 배척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우리가 편집증적 일관성을 고수하고 익숙한 것과의 이별을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의 지평 넓히기를 한사코 거절해 왔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구본형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이어 펴낸 책이 ‘낯선 곳에서의 아침’(생각의 나무)이다. 이로써 우리는 구본형을 통해 ‘익숙한 것’과 이별하고 다시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다. 숨통이 좀 트이는 풍경이 곧,우리들 눈앞에 펼쳐질 것 같지 않은가?
이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