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金日成)의 유일 독재체제에서는 수령의 교시만 있을 뿐 지도부 안에서는 아무런 토론이 없었던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필자가 보기엔 휴전 이후 가장 중요했던 정책 토론은 67년에 있었다. 남한이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반공적 개발독재 아래 경제건설에 힘을 쏟는 것에 경계심을 갖게 된 김일성은 당 수뇌부 회의를 열고 북한의 대응책을 토론하게 했다.
여기서 두갈래의 노선이 대립됐으니 한쪽은 경제개발론을, 다른 한쪽은 무력증강론을 각각 내세웠다. 김일성은 후자를 채택하면서 군부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자 군부는 68년에 청와대 기습, 푸에블로호 나포, 동해안 침투, 69년엔 미 해군 정찰기 격추 등 도발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군의 현대화와 한미 군사동맹의 강화 등을 유도하면서 남한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켰다. 반면에 북한은 군사비 부담을 더 크게 안게 됨으로써 그때까지만 해도 남한을 앞섰던 경제가 침체하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군부는 당과 정무에 깊이 간섭하게 됐고 김일성의 권한을 줄이려는 시도마저 보였다.
김일성은 재빨리 문제의 강경파들을 퇴진시키면서 71∼73년에 대화국면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75년에 베트남 공산화에 고무되어 다시 대결국면으로 돌아섰기에 북한 경제는 재기의 기회를 놓쳤고 80년대 이후 파탄으로 치달리게 됐다. 김일성이 만일 67년의 정책토론에서 경제개발 노선을 채택했더라면 남과 북은 글자 그대로 ‘선의의 체제경쟁’에 들어갔을 것이고, 북한의 운명과 남북관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김정일(金正日)의 유일 독재체제 아래서도 김정일의 결정만 있을 뿐 토론은 없다고 흔히 말한다. 거기서는 ‘강경파’대 ‘온건파’ 또는 ‘교조주의’대 ‘실용주의’의 대립이란 생각할 수 없으며 그저 김정일에 대한 복종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북한 당국자들과 대화나 협상에 임했던 미국 언론인들이나 외교관들은 “파벌이나 세력의 수준까지는 아닐지라도 노선의 차이나 강조점의 차이는 분명히 느껴진다”고 증언한다. 김정일이 중요한 쟁점들에 대해 별개의 보고서를 받아 저울에 달아보고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것 같다고 그들은 말한다.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5년 가까운 세월에 김정일 정권 안에서 어떤 정책토론이 벌어졌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이 취한 대내외적 중요 결정들을 분석하면 하나의 그림이 떠오른다. 그것은 67년 논쟁과 비슷하다. ‘개방’노선과 ‘강경’노선의 병존(倂存)으로, 전자는 남한과 미국 및 일본을 비롯한 서방세계와의 단계적 ‘협력’을 통해 경제를 살려보자고 주장하는 데 반해, 후자는 군부 중심의 사상통제와 긴장고조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대체로 후자의 길을 이끌어왔으나 잠 못 이루는 고뇌가 많을 것이다. 북한의 위기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서해안 교전사태’를 되돌이켜 본다. 북한의 의도와 관련해 ‘서해 어장 확보설’‘북방한계선 무력화설’‘서해5도 해역 분쟁화설’‘베이징(北京)회담을 겨냥한 우위확보설’‘미국과의 평화협정 유도를 위한 분위기 조성설’‘북한지도부 내부의 혼선설’ 등 많은 가설이 나와 있다. 필자로서 추가하고 싶은 것은 ‘위신 만회설’이다. 북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핵무기가 상당한 수준으로 개발된 듯한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줌으로써 매우 심각하게 다뤄져야 할 국가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핵개발 시설로 의심받았던 금창리 지하시설이 미국의 조사 결과 ‘광범위한 빈 터널들’로 밝혀짐에 따라 북한의 핵 신화는 사실상 깨져가고 있다. 여기서 북한은 서해안 작전을 통해 자신을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상대로 대접받을 만큼 위신을 만회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도는 무참히 깨졌다. 따라서 김정일은, 그리고 북한의 지도부는 일단 ‘긴장의 완화’로 방향을 틀어 숨쉴 여유를 확보한 다음 새로운 정책토론에 들어갈 것이다. 그 결론이 ‘미사일 발사를 통한 위신의 회복’으로, 그리고 새로운 군비증강으로 내려질 것인가, 아니면 대화노선으로 내려질 것인가. 북은 마땅히 후자로 나와야 한다. 그것이 67년 김일성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김학준〈본사 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