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 라고 공언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까지도 “21세기는 지식과 정보, 문화 관광의 세기이며 창조적 문화산업은 경제의 핵심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때 강조되는 것은 문화의 중요성이라기보다 문화산업의 경제적 중요성이다. 즉 ‘문화의 시대’란 문화상품의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시대라는 뜻이며,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가 급증하는 시대란 뜻이다.
▼저질 문화상품의 범람▼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배경에는 우선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있다. 통신과 운송의 발달은 전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어간다. 이제 하나의 문화상품은 그것을 생산한 문화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소비되고 유통된다. 성공한 영화나 전자게임에서 보듯이 문화상품의 소비자는 세계적 규모의 거대한 대중이다.
또한 문화의 시대는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른 귀결이기도 하다. 아직도 지구 곳곳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문질문명의 발달은 역사상 유례없이 수많은 사람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었을 때 사람들이 추구하게 되는 것은 문화적 욕구이다. 즉 정신과 감각의 즐거움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번창은 의식주를 해결한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문화를 향유하고 정신과 감각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을 때만이 그러하다. 나쁜 문화는 오히려 감각을 타락시키고 정신을 황폐하게 한다. 문화의 시대에서 문화란 대중소비용 상품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철저하게 이윤이라는 자본주의적 동기에 의해 생산된다. 보통의 상품인 경우 시장 경제 속에서 좋은 상품이 선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문화상품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문화상품의 경우 대중의 선택이 그 상품의 질적 수준에 의존한다기보다 자신들의 문화적 감각에 의존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화상품은 자극적이고 현란한 껍질로 대중을 유혹한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 욕구는 상당 부분 모방 욕구이며 훈련되고 계발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상한 문화적 감각을 형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현란한 대중문화의 공격에 쉽게 세뇌당하며 스스로 저질 대중문화에 현혹되는 저질의 문화적 감각을 지니게 되기 쉽다. 또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면 저질 문화상품은 만들기도 더 쉽고 팔기도 더 쉽다. 따라서 이윤을 위한 문화상품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이 되어갈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대중의 문화적 감각도 저질이 되어 간다. ‘금주의 비디오 대여 순위’나 ‘베스트 셀러 순위’ 등을 보면 저질 문화상품이 대중에 의해 선호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장삿속으로 10대 공략▼
이러한 문화산업의 부작용은 소위 10대 문화에서 더욱 쉽게 확인된다. 최근 문화산업의 가장 큰 고객은 10대이다. 이것은 상인들이 문화적으로 세뇌하기 쉽고 문화적 전염성이 강한 10대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했기 때문이다. 음반 영화 전자게임과 각종 액세서리 및 팬시 상품의 주된 고객이 초등학생으로 내려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것들이란 거의가 저급한 소비문화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심하게 말하면 국가적으로 장려하는 문화산업이 결과적으로는 불량상품으로 코흘리개들을 유혹해 그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 셈이다. 소위 신세대 문화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상업적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상품의 소비는 단순한 소비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소비자의 미적 감각과 삶의 의식 및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반인들이 저질 문화를 탐닉하게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좋은 문화적 감각을 형성해 가야 할 청소년들이 저급의 문화 상품을 소비하도록 조장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러한 문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문화 시대의 우울한 모습이다.
이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