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H.O.T’ ‘S.E.S’ ‘신화’를 잇따라 톱스타로 끌어올려 ‘스타 프로듀서’로 불리는 이수만의 칼럼을 매주 한차례 소개한다. 71년 가수로 데뷔한 그는 MC와 DJ 음반프로듀서를 두루 거친뒤 89년 SM기획을 설립, 대중문화산업의 첨병으로 활동해 왔다. 80년 서울대 농기계학과를 졸업했으며 8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누가 ‘H.O.T’를 가수가 아니라면 기꺼이 동의할 용의가 있다. 이때 가수를 노래만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말이다.
모 방송사의 프로에 출연해 가수들의 립싱크를 무조건 탓할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나는 PC통신상에서 ‘립싱크 예찬론자’가 됐다.
가수는 무조건 생방송으로 직접 노래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보수적인 입장의 가수론도 있다. 하지만 가수와 매니저,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가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해온 내 생각은 다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팝가수 마이클 볼튼도 방한 당시 립싱크를 했다. 목소리 상태가 안좋으니까 립싱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이클 잭슨?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가수로서의 모습도 주로 립싱크였다.
“일본 가수들은 라이브를 기가 막히게 하잖아? 라이브를 하면서 숨 한번 안차고 부르는 데 우리나라 가수들은 뭐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TV? 물론 라이브다. 그러나 생방송이 아니라 녹화방송이기 때문에 노래를 못 불렀다 싶으면 화면은 그대로 두고 노래만 다시 부른다. 몇번씩 재녹음할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이 주어지니까 시청자들에겐 당연히 환상적인 무대와 음악이 전달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녹화할 때마다 새로운 라이브 CD 한장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우리나라 방송은 어떤가. 시청자들은 알 수 없지만 무대에 선 가수들은 방청석의 팬들이 “꺅”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반주소리가 안들려 박자를 맞추기 어렵다.
생방송을 고집하다보니 댄스그룹의 헉헉 거리는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이같은 현실을 무시한 채 “생방송 프로에서 립싱크를 하는 ‘H.O.T’는 가수가 아니다”며 몰아세우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살다시피하며 음악적 정열을 불태우는 이제 스무살 갓 넘은 청년들에게는 너무 심한 ‘비수’가 아닐까.
중요한 것은 가수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면에선 ‘H.O.T’가 가수가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들은 일차적으로 엔터테이너다. 주 활동분야가 노래인 엔터테이너인 것이다.
나는 그들을 ‘싱잉 엔터테이너(Singing Entertainer)’라는 새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이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