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대공정책실 산하에 언론단을 신설할 것이라고 한다. 동아일보 6월 8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재 국정현안 전반에 대해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공보보좌관 지원팀을 2차장 산하 대공정책실 언론과에 통합해 언론단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정보원은 새로운 조직이 아니라 “단순한 기능 조정에 불과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집권 이후 가장 큰 위기에 처해 있는 게 사실이다. 파산상태에 빠진 경제를 이만큼 회복시킨 정권의 노력과 성과는 어디로 가고 옷로비 사건, 조폐공사 노조 파괴공작설 등이 터지면서 법무부장관을 해임했고 특별검사제도 수용하겠다고 물러설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 답답할 것이다.
거기에다 서해의 총격전을 계기로 햇볕정책을 폄훼하고 ‘신북풍’ 공작으로 몰아붙이는 세력까지 있으니 정권 담당자로서는 이런 근거없는 설을 보도하는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마디로 정부는 국정홍보가 잘못되고 있으니 언론대책의 틀을 새로 짜려는 것 같다.
국가정보원 언론단 뿐만 아니라 5월 청와대 비서진 개편 때 언론인 출신 비서관을 대폭 보강한 일이나 국정홍보처를 신설한 일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련의 언론관련 조치를 보면서 필자는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이렇게 단기적이고 정략적인 수준에서 추진하는 언론대책은 단기적으로 성공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정권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적어도 원칙과 비전을 가지고 추진하는 개혁정책에는 큰 해코지가 될 것이다. 정권 담당자들도 잘 알고 있듯 대통령은 추어올리면서 개혁정책에 대해서는 딴죽을 거는 보도를 이미 보고 있지 않은가. 지금 정권에 협조적인 언론과 언론인들이 다음 대선 때도 같은 줄에 줄서기 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이런 점에서 단기적 언론대책은 정략적으로도 실패할 것이고 보수동맹의 한 축을 이루는 권언(權言) 유착의 폐습을 유지시킬 뿐이다. 둘째, 일련의 언론대책은 현정부가 필요한 언론개혁을 추진할 정책과 비전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을 입증해 준다. 정권이 언론을 정권홍보나 선전의 도구로 여기면 시민사회는 국정홍보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정부가 언론을 통해 국민을 훈육하고자 하며, 시민사회가 정책결정을 감시하고 참여하는 공간을 억압한다면 어떤 개혁도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받기 어렵게 된다. 홍보의 대상이 되는 일과 자발적 참여는 실제 정책수행 과정에서는 백지 한 장 차이로 일어날 수 있지만 결과는 전연 다르게 나타난다. 현정부의 언론대책은 이 점에서 치밀하지 못한 셈이고 그것은 비전을 갖춘 정책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87년 이후 언론시장의 과잉투자와 과당경쟁으로 여론시장의 다양성이 높아지기는커녕 정치적 선정주의만 확산되었다. 10개 중앙일간지의 재무구조가 대단히 취약하고 광고의존 비율이 70%에서 80%에 이르고 있다. 재벌광고주에 대한 의존비율도 대단히 높아 신문들의 재벌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무디기 이를 데 없다. 현대와 삼성이 신문광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20% 정도라는 추정이 나와 있다. 왜곡된 시장이 보도방향에까지 심대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지역신문 시장은 폭발 일보직전이다. 인구 100만 안팎의 지방 대도시마다 다섯개 이상 심지어 열개의 지역신문이 발행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이들 지역신문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고 지역자본과 토호세력에 포섭돼 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왜곡된 언론시장은 정치적 선정주의와 보수적으로 편향된 여론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언론개혁도 정치권력이 언론을 장악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또 정부가 언론개혁에 나설 수도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론자본과 여론형성 권력을 소수가 독점하는 현상을 정상화시킴으로써 민주적 여론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국정홍보처나 국정원이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시작돼야 한다.
강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