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빠져나가려는 중이야
쉬잇 내 말을 들어봐
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다.시.는.돌.아.오.지.않.는.다
다시 돌아와도 찾을 수 없도록
도와줘 데이지, 내 얼굴을 묻어줘
내 의자와 찻잔을, 이름과
구두를 삼키고 동그란 꽃봉오리를
단단히 오므려버려 숱한 풀꽃더미
사이로 숨어버려 새 주소에도
검은 새떼가 그림자를 떨어뜨렸어
포크레인이 앞산을 퍼먹으며
뿌리 없는 나를 향해 다가오고 창문을
열면 녹슨 모래언덕이 무너질 듯
데이지, 그런데 난 돌아오고
싶을 거야 야수와 포옹할 미녀를 기다리며
끝없이 기나긴 불안의 끄나풀이 되고 말거야
도와줘 데이지, 돌아올 수 없도록
내 생의 사진들을 먹어줘.
―시집‘잘가라 내 청춘’(민음사)에서
언젠가 이 시를 읽고 무턱대고 거리를 걸어다녔던 생각이 난다. 무슨 일로였나? 그 때 마음이 많이 상했을 때인데. 문득 문득 생각했었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간혹 행복할 적이면 외려 더 짙게 드리워지는 생의 불안. 말해줘 데이지… 세상을 빠져나가면 어디에 당도하는지를.
신경숙(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