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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집중진단/공연예술계 재정]공연할수록 적자

입력 | 1999-06-28 19:42:00


《손숙 전환경부장관을 낙마시킨 ‘격려금’. 공연 예술가들은 한 목소리로 손 전장관을 옹호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무대를 지키는 예술인을 격려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건네지는 돈인데, 왜?’라며. 공연예술 환경은 정말 열악한가.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절규한다. 공연예술계의 살림살이를 살피고 대안을 모색해 본다.》

“한번 공연하면 수천만원 적자는 각오해야 한다.”

이는 한국 순수예술 공연계에서 진리다. 대박이 터진 희소한 공연이 아닌 이상 적자를 피할 수 없다.

한 해 무대에 올려지는 공연은 연극 1876건 양악 3832건 국악 1440건 무용 1323건(97년 문예연감 통계)에 이른다. 이 가운데 흑자를 올린 경우는 보기 드물다.

현재 102개의 연극극단(연극협회소속)중 대부분은 적자 경영을 한다. 오페라단장, 실내악단장 치고 집을 한두번 잡히지 않은 인물은 거의 없다. 연극 배우들은 장사 택시운전 등 부업으로 생계를 잇는다.

■연극계 ■

극단 신화의 금전출납부. 4월부터 두달간 서울 동숭동에서 성황리에 연극 ‘해가 지면 달이 뜨고’를 마친 결과다(표 참조).

대관료(2000만원) 배우출연료(2600만원) 등 총지출액은 7720만원. 관객 7300명 중 4900명(67%) 유료, 입장수입 5100만원. 적자 2620만원.

김영수대표는 “이 정도면 대학로 올 상반기 공연 중 수지타산 면에 있어서 최고 수준”이라며 “대부분의 극단은 유료관객이 40%를 밑도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원들이 받은 출연료중 50%(1400만원)를 다시 돌려줘 손실액을 1220만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손실액은 고스란히 대표의 빚으로 남는다.

그렇다고 사정이 좋아서 배우들이 개런티를 돌려준 것은 아니다. 배우 ‘급수’는 특급부터 A B C D까지. 연기경력 20년 이상, 국내외 크고작은 연극제에서 3회이상 수상한 특급 배우들로는 윤주상 전무송 김지숙 강태기 등 극소수가 꼽힌다. 손 전장관 파문으로 알려진 격려금을 받는 초특급배우들은 다섯손가락 안쪽.

특급의 개런티는 소극장 두달공연(중극장 한달, 대극장 보름)기준으로 1천만원. 두달공연에는 두달정도의 연습이 필요하므로 1천만원은 네달간의 수입인 셈. 동아연극상과 이해랑연극상 등을 수상한 대표적 중견배우 윤주상(50)은 아직 지하철을 이용한다.

이하 급수의 개런티는 500만원(A급) 300만원(B급) 150만원(C급) 50만원(D급)정도. 그러나 극단 소속 배우로만 공연할 경우는 정해진 개런티 없이 공연 후 대표가 일정금액을 나눠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연극인들은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다. TV 영화의 단역출연, 옷장사, 커피숍 아르바이트부터 택시운전까지 다양하다.

■음악계 ■

오페라단 오케스트라 실내악단 등 음악단체들도 한결같이 경영난을 호소하지만 단원들은 ‘따뜻’하다.

1년 예산규모는 오케스트라 10억, 연2회 공연하는 오페라단이 9억, 실내악단 5억 가량. 이중 20∼40%를 티켓 판매 수입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민간기업의 협찬을 구한다. 그러나 기업의 문화지원이 경기에 따라 들쑥날쑥한데다 이나마 국제통화기금(IMF)사태이후 크게 줄어 단체에 따라 많게는 1년매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누적적자를 짊어지고 있다.

김자경 오페라단은 지난해 12월 ‘메리 위도우’공연때 1억5천만원의 적자를 보아 김단장의 집을 담보로 융자를 받았다. 지난해부터 코리안심포니 서울심포니 등의 오케스트라는 단원 고정월급제를 공연당 10만∼15만원의 ‘연주료’지급제로 바꿨다.

그러나 단원들의 사정은 그리 나쁘지 않다. 대학교수직을 유지하면서 오페라단이나 악단에 참여하기도 하고 개인레슨을 통해 ‘가욋돈’을 벌 수 있기 때문.

■국악·무용계 ■

국악은 전통적으로 ‘출혈공연을 하지 않는’ 장르로 인식돼있다. 지역에 터를 잡은 명인들이 도제교육 형태로 제자를 양성하고, 충분한 경제적 토대가 마련될 때만 비로소 자비 공연을 갖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 국악관현악단들도 대부분 공립이나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운영되므로 흥행에 신경쓰지 않기 마련이다.

무용계의 경우 대부분 국시립 형태이거나 대학교수가 제자들을 중심으로 사재를 털어 운영한다. 국내유일의 민간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단장은 부설 발레스쿨 ‘아람’을 운영해 적자를 메꾸고 있다.

■공연적자는 숙명인가 ■

공연관계자들은 입장료 수입만으로 수지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TV 영화 음반 등 대량복제가 가능한 ‘문화산업’에 비해 연극 음악 무용공연은 땀냄새가 배어있는 소규모 수공업이기 때문이다.

연극계의 열악한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소극장 연극의 경우 정부와 기업체들의 보조없이 티켓판매 수익에 의존하는데 IMF사태이후 관객 수가 절반이상 줄었다.

그나마 기업 협찬금을 받는 곳은 주로 뮤지컬이나 악극 등 큰 규모의 공연을 올리는 몇개의 ‘비대학로’극단 뿐이다. ‘명성황후’의 에이콤이나 신시 서울뮤지컬컴퍼니 가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안은 없는가 ■

정부지원을 대폭 늘리고 민간의 공연예술계 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개선책 마련이 정부가 채택해야 할 대안이다.

문예진흥원 지정기부금 제도도 바꿔야 한다. 기업이 혜택받을 단체를 지정해 후원금을 내고 그 후원금은 세금혜택을 받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도 수혜대상을 일정규모 이상의 단체로 제한하고 있어 소규모극단이나 공연기획사 등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개인재단의 설립을 자유화해서 돈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의 경우 매년 50만개의 개인 비영리재단이 14억 달러를 문화예술계에 지원하고 있다.

〈유윤종·이승헌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