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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금강 紙上展(3)]정충엽과 심사정

입력 | 1999-06-29 18:43:00


금강산 만이천봉이 연출하는 장관은 꿈의 공간으로 기억된다. 화가들은 ‘이 선경(仙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하고 무척 고심해왔다.

금강산을 화폭에 담는 형식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겸재(謙齋) 정선(鄭)처럼 부감법(俯瞰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체 산 분위기를 집약시키는 방법. 다른 하나는 서 있는 위치에서 보이는 대로 실경(實景) 현장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겸재 이후의 화가들은 대체로 후자의 방식을 취했다. 그것은 금강산의 전체 풍광을 진경(眞景)으로 이상화하려는 생각보다, 계곡들의 실경미(實景美)에 심취한 까닭에서다.

정선식 금강산화법은 18∼19세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면서 하나의 범본(範本)으로 자리잡았다. 정선 화풍을 그대로 답습한 작가는 물론, 남종 산수화를 지향한 문인화가의 개성적 금강산도와 민화에 이르기까지 정선의 구도법이나 필묵법은 기본이 됐다.

조선후기에 금강산을 그린 정선의 손자 정황(鄭榥)은 물론 정충엽(鄭忠燁) 김응환(金應煥) 김유성(金有聲) 최북(崔北) 김윤겸(金允謙) 정수영(鄭遂榮) 등에게 정선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런 가운데 부감식 솔개화법의 정선화풍을 배우면서도 자기방식을 세우려는 변화도 없지 않았다. 그 한 예가 이곡 정충엽(李谷 鄭忠燁:18세기)의 ‘헐성루망 금강전도(歇惺樓望 金剛全圖)’이다. 금강산의 가을빛이 가득 담긴 소담한 풍악도(楓岳圖)이다. 우선 정선식 전경(全景)부감법의 시점을 절반쯤 낮추어 현장에서 눈에 들어오는대로 그리려 했다. 이는 정선과 심사정(沈師正)의 기법을 절충한 것이다. 근경(近景)에는 정양사(正陽寺)의 헐성루와 그 안에서 내금강 전경을 감상하는 인물을 배치하고, 그 위로 왼편의 향로봉 중향성(衆香城) 비로봉과 오른편의 혈망봉(穴望峰) 망군대(望軍臺) 능선을 약간씩 높여 고원법으로 올려 잡은 것이다. 정선처럼 웅장한 자태의 금강미를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정선의 금강전도보다는 현장 사생의 맛이 살아 있다.

정충엽은 의관(醫官) 출신의 중인화가이다. 필자는 지난해 여름 만폭동(萬瀑洞) 계곡을 답사하면서 바위에 ‘鄭忠燁’이라 새겨진 글자를 발견하고, 그의 금강산 여행을 직접 확인한 바 있다.

헐성루가 있는 정양사(正陽寺)는 내금강의 서북쪽 토산 정상인 방광대(放光臺)중턱에 있는 사찰이다. 표훈사에서 한 시간쯤 가파른 숲길을 올라야 정양사에 다다른다. 등산로가 어찌나 팍팍한지 옛 기행문을 읽으면 비로봉 등반에 못지 않다고 했다. 이 곳 정양사에서 내금강의 바위산들을 굽어보는 풍경은 힘든 등반으로 숨찬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금강전망의 제일미(第一美)로 꼽히는 곳이다.

정양사에서 내금강을 전망하는 누각이 ‘잠시 쉬며 깨달음을 갖는다’는 의미의 헐성루(歇惺樓)이다. 지난해 8월 정양사에 올랐더니 헐성루는 불타고 없었다. 다만 고려초의 석탑과 석등이 남아 있었고 석불이 모셔진 육모형의 약사전(藥師殿)과 반야전(般若殿)이 복원돼 있었다. 여름이라 정양사 주변 숲이 녹음으로 우거져 암산들의 정경을 충분히 맛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후 5시에서 6시경의 햇살을 받아 빛나는 암산들이 옛 문인들의 표현처럼 ‘백옥을 묶어 놓은 듯이’보였다. 그지 없이 아름다왔다.

현장에서 실경을 사생하듯 닮게 그리려는 화법은 이미 17세기 창강 조속(蒼江 趙涑:1595∼1668)에 의해 제시됐다. 그리고 18세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1707∼1769)의 금강산그림에 이르러 뚜렷해졌다. 간송미술관 소장의 ‘만폭동도’‘보덕굴도’ 등이 그 좋은 사례이다. 심사정은 정선의 부감식 전경표현보다 근경을 포착하는 현장 사생 방식을 취했다.

일민 미술관의 ‘몽유금강―그림으로 보는 금강산300년전’에는 ‘현재(玄齋)’의 타원형 도인만 찍힌 ‘단발령도’가 출품된다. 전체적으로 정선의 ‘단발령망금강’과 유사한 구도의 화법이다. 다만 단발령을 근경에 꽉 채우고 멀리 보이는 담청색 설봉(雪峰)을 크게 축소시킨 점이 정선 그림과 다르다.

심사정식으로 대상을 잡는 시방식(視方式)은 후배화가들에게 정선 못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18세기 후반의 대가인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1745∼?)에게 승계되어 변화된 금강산도의 완성을 보게 된다.

단발령은 서울에서 금강산을 여행하면서 거치는 필수행로이다. 그 곳에서 보이는 금강산경이 너무 아름다워 고갯마루에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사람이 있었다는 일화에 따라 ‘단발령(斷髮嶺)’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이태호 (전남대교수·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