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된 셈인지 요즘은 자고나면 큰 정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정책이 많은 것을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국정에 대한 넘치는 의욕의 결과로 얼마든지 좋게 볼 대목도 있고 공직자의 이런 열정을 막을 이유도 없다. 문제는 의욕이 지나칠 때다. 의욕이 지나치다 보면 정책의 방향이 일관성을 잃고 국가경영의 근본문제를 함부로 결정하기 쉽다.
지금이 꼭 그런 형국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문제만 해도 그렇다. 청와대의 이기호(李起浩)경제수석은 시행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방침이라고 천명하고 주무부인 재정경제부는 시기상조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부활하는 것인지 아닌지 종잡을 수가 없다.
문민정부 시절 금융실명제와 함께 어렵게 어렵게 도입되어 단 1년을 시행하다 유보된 것이 바로 지난해다. 경제전반에 대한 악영향이 당시 유보의 명분이었다. 재경부는 이 점을 지금도 우려한다.
이수석의 말대로 ‘공평과세’가 도입목적이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형평 확대를 위해 경제회복을 희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그런가.
정부가 중산층 서민층 보호대책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상속 증여세 강화 논의도 정책의 일관성을 잃은 대표적 사례다.
현재상속세의면세한도는최고 10억원선. 각종 공제한도를 몽땅 다 받아야 이 정도가 된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이것을 손질하려는 배경엔 금액이 과도해서 중산층 서민층 개념과는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정말로 웃기는 일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3년전 재경부에서 세제를 전면 손질하며 10억원을 내세운 명분도 다름아닌 중산층 육성이었다. 좀 많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었으나 관료들은‘사회안정세력’을위해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큰소리쳤다.
지금 장관을 하는 몇분도 그때 현직에 있었고 재경부의 주요 간부들도 그때 그사람이 태반이다.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국민이 수긍할 것이다.
우리는 국가의 경영체제와도 직결되는 조세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조세의 신설은 전쟁이나 혁명같은 비상사태로 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국의 소득세는 나폴레옹 전쟁 때 생겼고 부가가치세의 전신인 매입세는 2차대전 중, 미국의 소득세와 법인세는 1차대전 직전 신설됐다. 우리나라의 방위세 도입도 월남파병 때 이뤄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걸핏하면 세율을 높이고 새로 세금을 거두겠다고 한다. 거꾸로 세금혜택도 선심쓰듯 너무 쉽게 하는 습성이 있다. 요즘 당국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주식양도차익 과세나, 부유층을 겨냥한 이자소득세 누진제 검토니 하는 것들도 너무 즉흥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각종 정책실패나 국가적 곤경은 세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막중한 국가대사를 허술하게 결정하는 우리의 정신적 바탕이 원인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진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의 배경을 놓고 국면전환용이니 뭐니 이런저런 말이 나도는 것도 이런 풍토와 무관치 않다. 과거의 사례가 말해주듯 순수해야할 국가의 공권력 행사수단인 세무조사가 정치논리에 오염된 책임도 결국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닌가.
국민은 정책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관련부처간 충분한 협의없이 불쑥불쑥 나오는 설익은 정책으로 국민이 왜 시행착오의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대통령의 경제참모와 각 부처장관, 실무자 할 것없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이인길kung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