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의 한국지사가 ‘출세의 발판’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지사의 지사장이나 임원들이 아태지역 본부나 본사로 승진 발령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
가장 최근 사례는 보스톤컨설팅그룹 서울지사장을 지낸 데이비드 영. 96년 서울지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올해 4월 미국 보스톤 본사로 돌아가면서 조직 행정 인사 재정을 총괄하는 16인 운영위원회의 위원으로 승진했다.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 본사의 살림을 총괄하는 자리로 뛰어오른 것. 필립모리스 한국대표로 있던 송덕영사장은 지난해말 홍콩 아태지역본부 사장으로 승진했다. 필립모리스 역사상 동양인이 아태지역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처음.
이밖에 지난해 한국지사장에서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한 켈로그 이종석부사장(36), 역시 최근 본사 부사장으로 발령난 피자헛 마크 실즈부사장 등이 ‘용(龍)이 돼 승천한’ 대표적 경우로 꼽힌다.
이같은 승진 러시는 다국적 기업 내에서 한국 지사의 위상이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외국기업 홍보를 대행하는 오길비PR의 윤인숙이사는 “과거에는 한국 지사의 사장이나 임원 자리가 본사에서 볼 땐 다소 한직으로 여겨졌다”면서 “하지만 최근 한국 시장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면서 출세를 위한 ‘기회의 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석했다.
필립모리스 송덕영사장이나 켈로그 이종석사장은 이같은 ‘기회’를 십분 활용한 케이스.
송사장은 한국의 담배시장이 개방된 89년부터 한국지사에 근무했다.
수입담배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견뎌내며 꾸준히 판매량을 늘려 필립모리스가 줄곧 수입담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게 한 공로를 높이 인정받았다.
켈로그 이종석사장은 97년 한국지사장으로 발령받았다.당시 한국은 시리얼의 ‘불모지’나 마찬가지.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사장은 갖가지 실험적인 마케팅을 실시할 수 있었고 결과는 가파른 매출 신장으로 이어져 1년만에 본사 부사장 겸 아태지역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데이비드 영 전 보스톤서울지사장과 마이클 브라운 전 시카고은행 서울지점장은 한국의 경제위기 덕을 크게 봤다.
영 지사장은 지난해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면서 컨설팅 시장이 급성장한 덕택에 어렵지 않게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브라운지점장은 외국기업의 한국내 위상이 높아진 지난해 주한 외국기업의 ‘대변인’격인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한 것이 본인의 이미지 제고는 물론 승진에도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 중론.
한편 쓰리엠(3M)의 신학철이사는 ‘변방 출신’이라는 약점을 딛고 본사의 핵심 부서로 발탁돼 눈길을 끄는 인물.
84년 평사원으로 한국3M에 입사한 그는 뛰어난 마케팅 능력을 인정받아 95년 필리핀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이어 필리핀에서도 시장 확대와 성장에 공헌해 지난해 본사 사무용품 제품부이사로 한 단계 더 뛰어올랐다.
신이사는 본사에서도 실적을 쌓아 올해 5월 상무이사로 승진, 3M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잇 플래그 사업부문의 전세계 사업을 맡고 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