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결이를 낳던 날, 아침까지 아무런 기미도 없더니 오후 네 시쯤부터 아랫배가 싸르르하니 아파 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예정대로 삼 월 말이었는데 일주일 정도 늦은 셈이어요. 그래서 나는 한번도 겪어보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이것이 산통의 시작이겠구나 알아차렸지요.
겁이 나더군요. 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거든요. 배를 싸 쥐고 엉거주춤 일어서 보니까 의외로 걸을만 했어요. 나는 방 벽을 짚으면서 살살 걸어 보았죠.
한 달 전부터 아랫집 사모님이 일러준대로 거즈며 큰 타월들이며 보드라운 융으로 지은 포대기와 작은 이불과 면으로 지은 헐렁한 내리닫이 잠옷과 비닐 깔개 따위들을 꺼내어 윗목에 잘 정돈해 두었어요. 부엌으로 내려가 들통에 물을 붓고 연탄 화덕에 얹었고 사모님이 찾지 않도록 선반 위에서 마른 미역을 꺼내어 부뚜막에 잘 보이도록 얹어 놓았구요.
그러고는 아무려면 누군가 그 사이에 들여다보러 한 사람이라도 찾아오겠지 하면서도 무서워서 속이 떨릴 지경이었지요. 그럴 때 나는 감옥의 독방 어둠 속에 앉아있는 당신을 생각하고 독하게 결심했답니다. 나는 그래도 현우씨보다는 몇 배나 낫다고. 그렇지 않은가요? 나는 우리의 굳센 아가와 함께 있었으니까. 달팽이 모양의 원을 그릴 때처럼 진통의 간격이 원둘레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좁혀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에는 한바퀴 돌아오는데 간격이 한참이나 떨어진 듯이 천천히 오더니 점점 진통의 간격이 좁아지고 원이 작아지는 거예요. 나는 원둘레의 맨 마지막 가장 작은 동그라미의 끝이 분만이라는 것을 짐작해냈거든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나는 다시 방의 벽을 더듬으며 일어나 방 문께로 나갔습니다. 툇마루에서 땅으로 내려서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앉은뱅이 걸음으로 마루 끝에 앉은 다음에 먼저 발 한쪽을 내밀어 땅을 딛고 나머지 다른 발을 땅에다 가지런히 내려놓고는 마루를 두 손으로 꽉 짚고 몸을 돌리고 그제서야 걸음을 떼놓기 시작했지요. 한 걸음 한 걸음씩 주춤거리며 아랫집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걸어 내려갔어요. 내가 아랫집의 울타리에 이르러 대나무를 손가락으로 더듬다시피 장님처럼 돌아나가는데 마당에서 내 꼴을 보았던 사모님이 달려 나왔어요.
오메 한 선생, 이게 무슨 일이당가.
나중에 얘기를 들었지만 그때 내가 그이의 손을 움켜쥐는데 얼마나 우악스럽고 힘이 세든지 아픈데도 뿌리칠 수가 없더라고 합니다. 나는 목구멍 속에서 미처 떠오르지도 않는 소리로 중얼거렸어요.
사모님…좀 도와 주세요.
암은, 별 일이 아닝께 어여 들어가세.
하면서 사모님이 내 팔을 잡아 제 집으로 이끌어 들이려는데 내가 완강하게 버티더래요.
집에 가서…집에 가서요.
잉 그려. 쪼깨만 참소.
교감 선생님도 뛰어나오고 두 분이서 내 양팔을 껴들다시피해서는 우리 집으로 데려다 뉘였어요. 사모님은 눈을 부라리며 교감 선생님까지 내몰고는 나를 잠옷으로 갈아 입히고 이불 위에 비닐 깔개를 깔고 그 위에 큰 타월을 펼치고 나의 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숨을 크게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라고 일러 주었지요. 진통이 심해지더니 아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나는 아득하게 실신을 했던 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