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저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본 영화가 있다.
95년 미국에 연수로 1년간 머물면서 케이블TV를 통해 수없이 많은 영화를 봤다. 며칠 간격으로 같은 영화가 재방송되는데 한결같이 눈과 마음을 끈 작품이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였다.
횟수를 세지는 않았지만 30회는 넘게 보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한 바보와 그를 사심없이 사랑한 세 사람―어머니, 연인, 전우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면에서 모르는 것 투성이인 검프는 나의 스승이자 거울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가진 어른인 검프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익을 좇아 우르르 모였다가 이익이 없어지면 곧 결별하는 게 이 세상 어른들의 모습이다. 잘나고 똑똑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는 정말 드물다.
나는 아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조차 얼마나 아는 체 했던가.
슬픔을 삭이며 달리는 그의 무표정은 어떤가.
그는 작품 내내 달린다. 어릴 땐 조롱하는 무리들을, 성인이되어서는 그를 이용하는 자들을 피해 달렸다.
이장면을 보는 순간 TV프로를 통해 내가 때로 무심코 이용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검프들의 얼굴들이 겹쳐졌다.
연전에 펴낸 책 ‘상자 속의 행복한 바보’의 제목은 솔직히 ‘포레스트 검프’에서 힌트를 얻은것이다. 그 책머리에 나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제 그 바보상자(TV)속의 바보가 검프처럼 진짜 순수한 바보의 장점들을 닮기 바란다. …불행한 천재보다는 행복한 바보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주철환(MBC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