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화음」(Lost Chords: White Musicians and Their Contribution to Jazz, 1915~45) 리차드 섯홀터 지음 옥스퍼드대 출판사 ■
재즈는 흑인 음악이다. 또 재즈는 상식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재즈가 흑인만의 음악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역(逆)인종차별주의적 편견에서 비롯된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 재즈는 흑인이나 하는 저속한 음악이라는 편견이 결국 백인들의 재즈 음악 발전에 대한 공헌을 부당하게 축소하고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재즈는 흑인 연주자가 연주해야 역시 진짜 재즈고, 백인 연주자는 흑인 연주자들이 개발한 독창적인 재즈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식의 편견은 사실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불균형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 저자는 방대한 양의 자료와 재즈에 대한 해박한 지식, 설득력 있는 논리를 바탕으로 그동안 잊혀졌던 20세기 전반기의 독창적이고 뛰어난 많은 백인 재즈 연주자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재즈는 흑인만의 전통은 아니었으며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발전시켜 온 진정한 의미의 미국적 음악이라고 주장한다. 흑인의 스윙 스타일이 백인 재즈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흑인 연주자들도 백인들로부터 화음 형식 멜로디 음색 등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독창적인 연주 스타일을 개발해 재즈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잊혀졌던 백인 재즈음악가들이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정당한 대접을 받게 된 듯하다. 그러나 1930년대에 그 유명했던 찰리 바넷 밴드를 비롯해 몇몇은 독자적 개성이나 특성 없이 그저 흑인 음악 스타일을 그대로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아예 이 책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수모를 당한다.
이 책은 각 연주자에 대한 일화를 전기식으로 서술하면서 연주자들이 창안하고 발전시킨 연주 기법에 대한 자세한 음악학적 해석도 곁들이고 있어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백인 재즈의 다양한 연주기법들을 CD롬 부록 등에 담아 책을 읽으며 들을 수 있게 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주환 (보스턴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