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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룡의 환상세계]日「천국여권」마케팅

입력 | 1999-07-04 18:37:00


일본대중문화의 힘은 무엇인가. 자본력, 다양성, 선정성과 폭력성, 기술력 등등 사람에 따라서는 아주 다른 해석을 내린다. 모두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보통 간과하기 쉬운 한가지가 있다. 일본대중문화는 사람들의 생각을 제대로 포착하고 그에 딱 맞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마케팅 실력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천국여권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천국여권에 자신의 사진을 붙인 뒤 신상명세를 써넣고, 아랫 부분에는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한가지 소원을 적는다. 천국여권에는 1백개의 스티커가 달려 있다. 쓰레기를 줍거나 전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착한 일을 할 때마다 여권의 주인은 스스로 스티커를 떼어내 여권속의 빈칸에 붙여나간다.

천마리 종이학을 접는다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천국여권에 백장의 스티커를 붙이는데 성공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정도는 충분히 알고도 남을 10, 20대 여성들이 천국여권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심리학자 마슬로우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생리욕구(식욕, 성욕)’ ‘안전 욕구’ ‘소속 및 사랑 욕구’ ‘인정욕구’ ‘자아실현 욕구’의 5단계를 지닌다고 한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치안도 안전한 나라다. 생리욕구와 안전욕구를 만족한 일본인들은 당연히 사랑받고 싶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상위욕구를 채우고 싶어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칭찬을 받고 남에게 인정받는 일이다.

그런데 일본사회는 칭찬과 인정이 부족하다. 학생 때는 ‘시험성적’이, 사회인이 되면 ‘출세여부’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엘리트가 아니면 인정받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출세와 거리가 먼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키는 방법이 바로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다. 천국여권의 인기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칭찬합시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는 우리 현실. 우리 사회도 ‘칭찬’이 부족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김지룡〈신세대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