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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이 뛴다]컴퓨터 공부방 운영 김연주씨

입력 | 1999-07-04 19:48:00


김연주(金蓮珠·33)씨네 아파트는 매일 오후부터 초저녁까지 초등학교 아이들로 북적댄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국어 수학 사회 자연 등 학과목을 1,2시간씩 스스로 공부한다. 컴퓨터에는 과목별로 학습 프로그램이 입력돼 있다.

김씨는 아이들이 공부하다 막힐 때 풀어주고 학습 분위기를 잡아주는 교사 겸 감독 역할을 한다.

김씨는 컴퓨터 공부방인 ‘A플러스 깨비교실’(02―7234―114) 선생님.

89년 결혼한 전업주부 김씨가 선생님으로 나선 건 올 1월. 삼성항공에 다니던 남편이 실직을 하면서 가정엔 위기가 닥쳤다. 남편은 가장의 책임을 다 하려고 생명보험 영업사원으로 나섰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영업 일이 쉽지는 않았다. 힘들어 하는 남편 얼굴이 안스럽던 김씨는 일자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결혼 초 잠깐 속셈학원을 해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엔 자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남편의 퇴직금으로 학원을 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깨비교실 공부방’에 관한 광고를 신문에서 처음 보고는 당장 본사로 연락했다.

무엇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비용부담이 크지 않은 점이 김씨의 처지에선 마음에 들었다. 컴퓨터 3대를 마련하는 데 500만원, 본사가 제공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비로 700만원, 총 1200만원의 ‘창업 비용’이 들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돈만 들이고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잤어요.”

아파트 베란다에 ‘컴퓨터 공부방’간판을 걸자 주변에서는 다들 생소해했다. “컴퓨터 공부방이면 컴퓨터를 가르치는 곳이냐”는 문의부터 “애들이 컴퓨터 게임만 하려고 할 텐데 제대로 공부가 되겠느냐”는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차츰 한명 두명씩 아이들이 배우러 오고 김씨의 세심한 지도가 소문을 타면서 회원이 몰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무엇보다 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부를 가르친다기보다 아이들 자질구레한 일까지 상담해주는 역할을 해줘야 아이들이 믿고 따르죠.”

지금은 많은 아이들이 학교 갔다오면 먼저 이곳에 오려고 할 정도라고 한다. 김씨를 ‘선생님’ 대신 ‘이모’라고 부르며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 얘기까지 들어주고 얘기를 나누느라 저녁에는 항상 목소리가 쉴 정도다.

김씨는 컴퓨터 공부방의 장점으로 “모든 학습 과정이 컴퓨터로 기록되기 때문에 투명하다는 점”을 꼽는다.

초등학교 4학년인 큰 애가 친구들에게 엄마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도 여간 기쁘지 않다.

“자기 친구들이 엄마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뿌듯한가 봐요.”

현재 20명 가량을 가르치고 있는 김씨의 한달 수입은 150만원 가량. 물론 가계에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 김씨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최소한 둘째 아이(6)가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계속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