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5일 국가보안법 개폐 방침을 밝힌 것은 ‘인권 정치인’으로서의 오랜 정치적 소신을 구현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대통령은 80년대 평민당 시절부터 국보법을 ‘민주질서수호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창해왔다. 냉전시대가 종식됐는데 국내 법에는 극단적인 이념대결 조항이 존속돼 국민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한다는 논리였다.
김대통령은 지난해 말에도 국가정보원에 직접 국보법 개정안 마련을 지시했고 국정원은 당시 개정안을 국민회의 정책위에 넘겼으나 자민련이 난색을 표해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 개정안은 불고지죄와 찬양고무죄 등의 폐지가 골자였다는 전언으로 이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정부와 국민회의의 향후 국보법 개정작업의 밑그림이 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김대통령의 이날 발언에는 민주화세력의 불만을 수용한 측면도 깔려있다. 과거 민주화투쟁을 함께했던 세력들은 정권교체 후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며 국보법 개폐 등을 여러차례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또 국보법 개폐를 통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색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해 교전사태 등으로 대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어 차제에 남북관계의 걸림돌 중 하나였던 국보법을 손질, 화해 기류를 조성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이같은 뜻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의 입법과정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자민련 이양희(李良熙) 대변인은 이날 “김대통령의 발언을 추후 검토, 국민회의와 협의하겠다”며 공식 논평은 유보했지만 자민련의 대다수 의원들은 반대편에 서 있다. 정책위의 한 관계자는 “97년 대선후보단일화 당시 국보법은 현행 법체제를 유지하기로 합의한 바 있는데 이제 와서 상의도 없이 개폐 발언을 한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역시 국보법 개폐에는 반대하는 쪽이다. 안택수(安澤秀)대변인은 “김대통령의 발언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국보법이 갖는 국가안보상의 의미 등을 감안할 때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