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이 있을까. 만화는 조잡하고 이념 선전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 “만화방이 없어 만화책은 그리 많이 못보지만 만화영화는 매일 TV에서 해줍니다. 오후 5∼6시면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TV앞에 모여들 정도로 북한에서도 만화영화는 굉장히 인기디요.”(귀순자 전철우)
7, 8월 차례로 개막되는 ‘춘천 국제 애니타운페스티벌’과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는 다양한 북한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선보인다.
‘령리한 너구리’ ‘소년장수’ 등 TV용 애니메이션과 극장용 장편영화 등 총 20편이 상영되고 북한만화 60여점도 전시된다. 이처럼 대규모로 북한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공개되는 것은 처음.
이중 극장용 장편영화인 ‘호동왕자와 락랑공주’(90년작)는 수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느다란 눈썹을 가진 공주의 모습은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에 걸맞는 전형적 북한 미인의 얼굴이다. 현란한 기마술과 고구려 궁중춤 장면 등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도 볼 수 있다.
북한 애니메이션은 풀컷(1초에 그림화면이 12컷 이상)을 사용하기 때문에 1초에 7컷을 쓰는 한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보다 영상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 태권V나 그랜다이저 같은 로봇이 등장하는 남한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지혜로운 동물이나 곤충 식물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나온다.
예상 외로 이념성이 짙은 내용은 거의 없는 편. 통일부 관계자는 “만화로 혁명을 강조하면 자칫 희화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인지 아동용 만화는 교훈적인 전래동화나 과학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애니메이션은 유일한 아동영화 제작소인 ‘4.26아동영화촬영소’에서 만든다.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52년 제작된 ‘신기한 복숭아’와 ‘흥겨운 들판’. ‘조선영화 연감’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70년대에는 한해 10편정도, 90년대 초반까지는 한 해에 20편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어려워진 경제사정 때문에 크게 줄었다.
최근 북한은 프랑스와 합작을 하는 등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해외수출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둘리’의 만화가 김수정은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상업적으로 때가 덜 묻은 북한 만화는 캐릭터가 촌스럽기는 하지만 동영상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