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내과병동 94호실.
야윌대로 야윈 몸 곳곳에 주사바늘을 꽂은채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는 큰아들(27)을 바라보던 왕영대(王泳大·54·서울 도봉구 도봉2동)씨 내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갔다. 20년간 트럭에 식기를 싣고 다니며 팔아 생계를 꾸려온 왕씨부부.
“한푼두푼 모은돈으로 지난해 다섯식구의 보금자리인 전셋집도 마련해 남부러울게 없었습니다.”
단란했던 왕씨가족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지난해 3월.
심한 몸살로 병원을 찾았던 왕씨는 담당의사로부터 폐암2기 판정을 받고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아 버렸다.
“수술받지 않으면 1년을 넘길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였죠.”
왕씨는 항암치료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1년넘게 입퇴원을 거듭하며 병마와 싸워나갔다. 부인 임순이(林順伊·47)씨가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나갔지만 매달 수백만원씩 나오는 치료비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진관에서 근무하며 가계를 돕던 큰아들마저 석달전 간암2기 판정을 받고 쓰러져 버렸다.
2년전 앓았던 간염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전 살만큼 산 사람이니까…. 하지만 아들은 좀 더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큰아들의 손을 꼭 잡은 왕씨의 뺨위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이들 부자의 등뒤로 붉은 저녁놀이 길게 길게 번져가고 있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