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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Style]자네티의 작품세계

입력 | 1999-07-13 21:10:00


집은 인간과 같다. 집이 지어지는 것은 곧 집의 탄생이고 집이 철거되는 것은 곧 집의 죽음이며, 그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집은 소리를 죽인 채 강렬하게 타오르기도 하고 사람들을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기도 한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감이 번득이는 세트 디자이너인 유제니오 자네티가 23일에 개봉하는 영화 ‘유령의 집(The Haunting)’을 위해 만든 집은 바로 이처럼 생명이 있는 집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유령의 집’은 사람들의 상상력과 정신을 사로잡는 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이 유령의 집뿐만 아니라 자네티가 디자인한 세트들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관객들의 상상력과 정신을 사로잡아왔다.

자네티의 세트들은 영화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심리적인 분위기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의대생들이 죽음을 경험하는 실험을 하는 영화‘플랫라이너스(Flatliners)’에서 머큐리신의 거대한 머리 조각상은 내세와의 연결을 암시하고 있다. 또 ‘소프디시(S oapdish)’의 세트는 단테의 지옥에 나오는 붉은 고리처럼 디자인되어 있는데 등장인물들이 타락해갈수록 모든 것의 색채가 점점 더 붉게 변해간다.

자네티는 ‘유령의 집’이 단순한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집도 단순한 세트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집은 언제나 우리 어린 시절의 초상”이라면서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묘사해보라고 했을 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그 집이 아주 훌륭하고 편안한 집이었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유령의 집’에서 일종의 촉매 역할로 등장하는 릴리 테일러는 자네티가 디자인한 으스스한 집처럼 음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자네티는 “그녀에게는 사실상 어린 시절이 없었으며 아버지도 존재하지 않았다”면서 “이 영화를 귀신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영화의 핵심을 제대로 표현한 말이 아니다”고 말했다.

자네티는 시인이자 저술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린 시절 그의 집은 예술관련 서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아버지의 영향 덕분인지 그는 최근 영화 대본을 쓰는 작업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가 70년에 마리아 칼라스가 출연한 영화 ‘메데아’에 세트 디자이너로 처음 참가했을 때의 경험에 바탕을 둔 이 시나리오는 칼라스를 연상시키는 프리마돈나가 출연하는 오페라를 지휘하기 위해 나폴리로 여행하는 미국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칼라스에 대해 “그녀는 전형적인 프리마돈나의 모습과 정반대의 사람이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신경증 환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아주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자네티가 디자인한 세트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화면에 펼쳐지는 것들이 마술이자 연극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