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窓]이헌진/어느 독립지사의 꼿꼿한 삶

입력 | 1999-07-15 19:12:00


경실련 사무총장 등을 지낸 시민운동가 서경석(徐京錫·51·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집행위원장)씨는 평소 “아버지 삶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아버지 서재현(徐載賢)옹의 영정 앞에서 그는 목이 멘 채 고인의 삶을 회상했다.

전날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서옹은 임시정부 의정의원 겸 내무의원을 지낸 부친 서병호(徐丙浩·1885∼1972)선생과 함께 항일운동을 벌인 공로로 2대에 걸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애국지사.

그는 또 차남 경석씨의 시민운동을 든든히 받쳐준 후원자였다. 시민운동이 나라의 정의를 세울 수 있는 일이라는 믿음과 아들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항의시위를 할 때면 80세가 넘은 아버님도 피켓을 드셨지요. ‘나 같은 늙은이들이 더욱 앞장서야 한다’던 아버님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삶은 나라와 남을 위한 봉사와 사랑, 그리고 철저한 겸양의 미덕으로 일관됐다.

광복 뒤 해군준장 시절 양말이 해지면 전구를 끼워 기워 신었고 공무로 외국출장을 가면 늘 남은 경비를 국고에 반납했다.

전역한 뒤 국영기업체인 한국기계공업 사장까지 맡았지만 결혼 18년이 지나서야 은행융자를 끼고 14평짜리 문화주택을 마련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94년에야 자녀들이 알았을 정도로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