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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규민/재벌反目에 국민만 멍든다

입력 | 1999-07-21 18:47:00


대우그룹의 사장단이 모여 삼성에 대한 ‘복수’를 결의했다. 김우중회장이 경영권을 담보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기 열흘전 쯤의 일이다. 누군가 “재기해서 10년 뒤 삼성을 쳐부수자”는 말을 할 때 분위기는 비장했다.

대우 위기의 근본이 삼성에서 기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대우의 경영스타일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중론이라면 대우 사장단의 주장은 동정은 가지만 공감은 안간다. 지금같은 여건이 계속될 때 삼성에 대한 반격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풍전등화의 대우가 왜 그처럼 이를 갈고 나서게 됐는지는 중요하다.

작년말 삼성이 대우에 빌려줬던 8800억원의 여신을 급속히 회수한 것이 두 그룹간 갈등의 단초가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금시장에서는 삼성의 행동을 보고 ‘대우의 붕괴’를 예감한 전주들이 겁에 질려 어음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급속히 악화됐다고들 말한다.

삼성그룹의 고위인사가 대우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얘기하고 다닌 내용이 증시를 타고 확산된 것도 대우가 “모략 때문에 더 어려워졌다”고 분개하는 대상이다.

삼성자동차 빅딜을 놓고 양그룹이 대립한 가운데 불거진 이런 일들은 사실여부를 떠나 삼성으로서는 오해받기 딱 좋은 사건들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는 계량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날의 대우사태가 반드시 삼성에 유익하고 유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만의 하나 대우 때문에 국가경제가 어려워진다면 다른 재벌인들 온전할 리 없다.

재벌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식 다툼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해외수주 과정에서도 재벌사들 끼리 치고 받으면서 값을 깎아 국익에 손해를 입힌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80년대 내내 말썽이었던 국내 조선사들의 해외수주 덤핑경쟁이나 해외 건설시장에서 빚어진 우리 업체들간의 발목잡기는 아예 전통처럼 여겨진다. 오죽하면 당시 중앙정보부가 나서서 이번에는 누가 하고 다음번에는 누가 하라는 식으로 조정을 하고 나섰을까. 세상에 이런 나라가 우리말고 또 있을까.

일본의 경우를 보자. 90년대 중반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플랜트입찰이 있었을 때 그들은 ‘인도네시아 겐규카이(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부문별로 강점이 있는 회사를 선정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나눠서 수주를 했다. 가전업계에서 숙적이라던 소니와 파이어니어가 차세대 VCR를 공동개발키로 손을 잡은 것이나 업계 1,2위를 다투는 미쓰비시신탁은행과 스미토모신탁은행이 업무제휴는 물론 은행경영상 대단히 민감한 부분인 자본까지 제휴키로 한 것은 우리에게 교훈적인 사건들이다.

빅딜을 겪으면서 대우와 삼성이 원수가 되고 현대와 LG, LG와 대우간에 반목이 생긴 현실을 보면서 자꾸 우리 기업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해당그룹들이 시장에서 경합할 때 이성적 경쟁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로 인한 국가경제의 손실을 생각하면 국민만 불쌍하다는 느낌이다.

그런 차에 21일 저녁 전경련 하계세미나에서 김우중회장이 재계화합을 위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한을 품은 쪽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이라 재벌간 다툼이 종식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도 자꾸 분란을 일으키는 기업이 있다면 그런 기업은 소비자인 국민이 시장에서 퇴출시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 재벌반목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규민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