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고정운(33·포항 스틸러스)은 관중석에 숨죽이고 앉아 있었다. 라커룸에도 벤치에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침울한 팀 동료들을 먼발치서 바라보다 쏜살같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6월9일 목동에서 열린 프로축구 99바이코리아컵 K리그 부천 SK―포항 스틸러스의 경기.
포항은 이날 이동국의 선취골을 지키지 못하고 홈팀 부천에 1―2로 역전패했다. 포항 5연패, 원정경기 7연패.
“제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간이었어요. 팀 최고참이자 최고 연봉(1억5000만원)선수인 제가 후배들의 연패 행진을 그저 무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으니.”
지난해 왼쪽 무릎 부상 후 2군에서 회복훈련에 전념하던 그는 정규리그 팀 경기 때마다 스탠드에 잠입했다. 그때마다 팀은 어김없이 패했다. 경기 후 도저히 코칭스태프나 후배 선수들을 찾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18일 후 고정운은 만 7개월 만에 그라운드에 다시 섰다. 이후 7경기에서 2득점 3도움. 거의 매경기 공격포인트를 쌓아 나갔다. 팀은 6연패 사슬을 끊었고 18일 부산전에서는 2―1로 승리, 정규리그 개막 후 처음으로 8위에 올라섰다.
“운동장에 있을 때나 고정운이지, 쉬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주변에서 이제 고정운은 끝났다는 말도 들리고.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죠. 사실 쉬는 기간 볼만 안 찼지 운동량은 누구보다 많았어요.” 고정운이 단숨에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한 비결은 그의 타고난 성실성 때문. 단 하루도 웨이트 트레이닝과 수영을 거르지 않았다. 체력 저하로 포지션이 변경되면 ‘옷을 벗는다’는 다짐을 잊어본 적이 없다.
고정운은 현재 통산 48골 46도움을 기록중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라이벌 김현석(94골 44도움)을 따돌리고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50(골)―50(도움)’ 클럽에 가입할 전망이다. 그러나 그는 기록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은퇴하는 날까지 그 명성 그대로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 이것이 그의 작은 소망이다.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