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행복을 처방하는 정신과 의사라고 하지만 나도 가끔은 사적인 문제로 괴로워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비겁하게 영화로 곧잘 숨어버리곤 한다. 영화를 보며 실컷 통곡을 하고 나면, 상처받은 자존심을 위로해주는 따뜻한 친구와의 만남처럼 막힌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 든다. ‘중앙역’도 그렇게 우울한 나를 달래준 영화 중 하나였다.
브라질의 역전에서 대필을 해주며 혼자 사는 중년의 노처녀와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어린 소년이 서로 만나 엮이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소년이 아버지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정에서 여주인공의 외로움과 무의미한 삶이 치유되는 과정이 마치 현실 그 자체를 보는듯 담담하게 그려진다.
나야 고맙게도 아들이 둘이나 있는 ‘대가족’ 속에 살고 있지만 때로 그 북적거림이 더 나를 아프고 외롭게 할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노처녀 여주인공과 어린 소년이 나누는 단촐한 우정이 어쩜 더 부럽고 귀하게 보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한때 어린 소견으로 헤어질 바에는 차라리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나 둘씩 기억의 창고에 넣다 보니, 이별 그 자체가 사랑을 완성시킨다는 생각도 든다. 기왕 떠나 보내야 한다면 고즈넉한 풍경의 작은 간이역같은 그런 고독도 괜찮을듯 싶다.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영원하고 순수한 사랑에 대한 내 헛된 기원 때문인가. 인파로 덮인 중앙역에서 시작한 영화가 한적한 교외의 작고 아름다운 집에서 끝나는게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만약 헤어진 정인(情人)에 대한 추억을 영원히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불운한 처지에 있다면 ‘중앙역’의 이별에 동참해 긴 울음으로 그 상처를 달래보면 어떨까.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