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이란 말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된 이중적 성윤리 개념으로 불평등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부계(父系) 부권(父權)은 남성에게 여성의 성에 대한 소유와 통제의 권한을 부여했다. 여성이 순결과 정절(貞節)의 의무를 지키는 것은 가장인 남성의 성적 소유권을 지키는 일로 인식됐다.
이같은 ‘정절 이데올로기’는 조선시대부터 권력층 남성의 부와 권력의 유지수단으로 여성에게 강요된 것이다. 지금에는 정절이 순결이라는 용어로 탈바꿈해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와 소유의 맥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해 유지된 순결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려 없이 그대로 도입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 담론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성적 모순구조를 고착시킬 우려가 있다.
또 순결이란 용어는 성폭력이 여전히 폭력에 의한 피해가 아니라 성관계이며 순결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하는 현실과 결합해 피해자들을 더 깊은 절망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요즘 일부 단체에서 비뚤어진 성문화를 바로잡자는 취지로 ‘순결서약 운동’을 벌인다. 그러나 이에 앞서 성관계에 내재된 권력 관계를 들여다 보고 지금과 같은 성문화로 인해 고통을 받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합의에 의한 개인의 일상적 성관계에서도 여성은 성적 자율권,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성도덕 확립은 순결 차원이 아니라 성의 평등관계를 확립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청소년에게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켜내는 식의 교육보다는 평등한 성 주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불평등한 ‘순결’이란 단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가치 목표를 미리 정해놓고 절대절명의 순간까지 이를 지키라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청소년 순결서약 운동에 반대한다.
순결의 억압적 기원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없으면 순결서약 운동은 기존 남성중심 권력체제를 유지하거나 종교적 세력 확장을 위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유석(한국성폭력상담소 인권위원회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