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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서현/작연으로 쌓는 不實건물

입력 | 1999-08-01 19:21:00


쉿, 모두 조용! 모든 소음은 금지된다. 수능시험 듣기평가 시간에는 비행기 한 대도 뜨고 내리지 못한다. 대학입학시험은 이 땅의 모든 것을 허용할 수도, 금지할 수도 있는 신화다.

★설계심사 로비 판쳐

비판은 아직도 들끓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가치는 간과할 수 없다. 공정함이다. 시험장에는 재벌그룹 회장의 아들도, 북청 물장수의 손자도 모두 필기구만 들고 들어간다. 운전사가 모는 검은 승용차를 타고 왔건, 퀵서비스 아저씨가 모는 오토바이에 실려 왔건 모두 같은 자리에 앉아서 시험을 본다. 그래서 수능시험은 이 사회의 신화다. 기부금 입학의 불순한 도전을 버텨내는 이 땅의 힘이다. 물론 누구는 고액과외를 하고 누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 경쟁에 이르는 과정까지 공정한 사회는 없다.

그러나 경쟁 자체는 공정해질 수 있다. 그리고 공정해야 한다. 건축가도 경쟁을 한다. 현상설계라는 이름의 경쟁이다. 건축설계도 인간의 지적 노동이다. 누가 어떻게 설계를 하느냐에 따라 한심한 결과도,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드는 결과도 나올 수 있다. 바로 그 좋은 설계를 얻기 위해 현상설계라는 과정을 거친다. 특히 관공서에서 발주한 건물을 지을 때는 건축가 선정과정의 공정함도 중요하므로 현상설계를 거친다. 그러기에 심사위원단은 대개 공정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한국사회에서 언제나 존경받는 분들, 교수들이 대개 심사위원을 이룬다.

그러나 수 억, 수십 억 원의 설계비가 걸린 현상설계에는 성인군자를 표방하는 건축가들만 응모를 하지는 않는다. 심사위원 명단이 발표되면 심사 전에 심사위원을 찾아간다. 발표 안된 명단을 빼내는 것도 능력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만든 안을 보여준다. 학연이 닿으면 이야기도 쉽다. 때로는 설계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심사위원에 들어갈 만한 교수들의 리스트를 작성한다. 그리고는 미리 자문을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계획안을 보여준다. 나중에 심사위원에 위촉되면 어느 쪽에 표를 던져달라는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도 없다.

축구가 아름다운 이유는 영 대 영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홈 경기라고 우리가 한 점을 더 넣은 것으로 치고 경기가 시작되지 않는다. 백 태클을 하면 유니폼의 색깔에 관계없이 붉은 딱지를 먹는다. 심판이 없으면 축구는 럭비도 되고 격투기가 되기도 한다. 익명의 경쟁자들끼리 알아서 신사협정을 하기를 바라는 건 희망사항이다. 게임의 이론은 배신하고 무임승차하는 것이 개인에게 더 이익임을 알려준다. 개인의 이기심을 통제하고 경쟁을 공정하게 만드는 이는 심판들이다.

★공정한 경쟁 가능해야

건축현상설계를 공정하게 만드는 이는 심사위원들이다. 연줄을 앞세워 찾아온 건축가들을 냉정히 돌려보내야 한다. 그래야 경쟁이 정말 공정해진다. 심사위원에 대한 존경심도 커진다. 대학입시 성적을 근거로 서로 뭉치고 봐주는 사이 이 도시에는 수준미달의 건물들도 두려움 없이 들어섰다.

우리끼리만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사이 외국의 건축가들은 실력을 앞세워 이 땅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국경 내의 경쟁이 공정하지 않으면 국경을 넘는 실력이 생겨날 수 없다. 교수가 들러리 심사위원이 되는 관청 발주 현상설계도 있다. 요식 행위로 행하는 현상설계에서 이미 결과를 정한 발주처 내부 인사들이 심사위원의 과반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선안이 오래 전에 내정된지 모르고 현상설계에 참여한 건축가, 심사에 참여한 교수는 씁쓸함만 뒤에 남기고 자리를 떠야 한다.

건축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건축의 불공정함이 사회의 분노를 사야 도시가 아름답고 건강해질 수 있다. 공정하지 않은 건축가 교수 공무원을 큰 소리로 질타해야 한다. 모두 쉿, 조용히 있는 동안 건물은 무너지고 어린이들은 불길에 휩싸였다. 내 친구, 선후배가 이 땅에 건물을 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도시에 좋은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다. 이 도시에 겉모습이 그럴 듯한 건물이들어서는것보다중요한 것은 이 사회가 공정해지는 것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지 않는 도시에 아름다운 건물이 물결칠 수 없다. 절대로 없다.

서현(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