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낸 수마(水魔)속에서도 ‘의로운 손길’은 있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1일 오전 4시반경 동트기 직전의 칠흑같은 어둠 저편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흙탕물의 ‘망망대해’를 작은 고무보트 하나로 가로지르던 한기홍씨(41·경기 연천군 백학면사무소 기능직)와 김상현씨(38)는 순간 멈칫했다.
31일 밤과 1일 새벽 사이 경기 연천군 백학면 11개 마을을 잠기게 한 집중호우를 뚫고 이들은 혹시나 고립돼 있을지도 모를 주민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마을 곳곳에서 주민 수십명이 지붕 꼭대기까지 차오른 물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흙탕물이 보트를 밀어붙이며 거세게 흘렀다. 언제 보트가 뒤집힐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할 수 없었다.
대피소인 면사무소와 부근 마을을 왕복하길 수십차례. 오후1시까지 8시간반 동안 이들은 34명의 소중한 목숨을 구해냈다.
같은 시간. 연천군 군남면 군남파출소 권배숭(權倍崇·27)순경 등 3명도 주민들을 구조하느라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31일 밤 연천군은 타 지역으로 통하는 도로는 물론 전기와 전화도 모두 끊긴 상태.파출소에 있는 보트에 올라 무작정 흙탕물 한가운데로 나갔다. 물에 잠긴 건물 옥상에서 주민 수십명이 애타게 구조를 호소하고 있었다.
1일 오전8시경.
26명을 구조하고 난 뒤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권순경에게 한 주민이 다급히 이모씨(54·여)가 보이지 않는다고 외쳤다.
황급히 이씨의 집으로 달려가자 물에 뜬 소파를 움켜쥔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씨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체됐다면 물살에 휩쓸려 갔을 상황이었다. 권순경 등은 이 마을 주민들의 ‘수호 천사’였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