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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신혜수/여성인권신장 ‘멀고 험한길’

입력 | 1999-08-05 18:23:00


올해로 여성운동을 시작한지 25년째. 7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80년대 초까지 유신독재 기간에 여성단체 두 곳의 실무자로 여성의식화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하다가 암울했던 82년 미국유학을 갔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교포사회의 성차별, 미국사회의 인종차별과의 투쟁을 기치로 내걸고 뉴욕에 여성청우회라는 단체를 친구들과 같이 만들었다. 교포사회에서 처음으로 한인회장 출마자를 초청해 토론회를 개최해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권인숙씨 성고문사건이 났을 때는 뉴욕한국총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해 여권연장이 안된 일도 있었다. 박사학위 논문은 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여성운동계에서 문제로 느끼던 향락산업을 주제로 한 ‘여성의 성적(性的) 서비스와 경제발전’이었다.

미국인 지도교수는 당시 충고하기를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학문의 세계에서는 인정이 안된다”고 했다.

91년 귀국해서 지금까지 여성의 전화와 인연을 맺고 여성인권을 신장하는데 힘을 보태면서, 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론과 실천, 학문과 운동,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지는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 기반을 둔 살아있는 이론, 그리고 이론적으로 무장된 실천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기에 둘 다 제대로 못하면서 어느 것도 포기하지 못하는지 모른다. 지금 한국의 현실이 제도적으로 정비된 선진국과 달리 문제투성이면서도 동시에 죽어라고 노력하면 그래도 개혁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지니까 사회운동의 매력을 떨쳐버리기 힘든 측면도 있다.

운동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일이 최근에 두 건이나 있었다. 하나는 미혼모 진현숙씨의 아기를 찾아 며칠 전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사무실에서 돌잔치를 조촐하게 벌였다. 진현숙씨는 동거하다가 딸을 낳았는데 아기를 낳지 말 것을 종용하던 미혼부가 한 달된 아기를 진현숙씨 모르게 입양시켜 엄마가 열 달 동안 아이를 찾아 헤맸다. 진현숙씨는 초기에 미혼모에 대한 무시와 편견, 손가락질과 혼자 싸워야만 했다.

그러다가 여성신문이 보도하고, 모금을 하고, 여성의전화연합에서 변호사단을 꾸리고, 정보공개청구 입양무효소송 유아인도소송 등을 할 준비를 했었는데 고맙게도 양부모가 훌륭한 분들이어서 사정을 알고 법적인 절차까지 가기 전에 아이를 돌려주어 해결됐다.

또 하나의 보람은 이론과 실천을 연결한 구체적 성과물로서 ‘한국 여성인권운동사’를 발간한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 여성에 대한 폭력, 인권분야에서 운동의 현장, 숨은 노력, 그 속의 이론적 고민 등을 정리했다. 성폭력추방운동, 아내구타추방운동, 매춘여성운동, 기지촌여성운동,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운동, 장애여성운동, 레즈비언 인권운동, 그리고 국제여성인권운동 등을 현장에서 벌인 주체들이 주로 집필했다. 그동안 여성인권이 어떤 투쟁과 노력을 통해 법과 제도와 의식을 바꾸어냈는지, 또 어떤 면을 바꾸어낼 수 없었는지를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볼 수 있다.

본격적인 과제는 이제부터다. 진현숙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사회의 인권의식 평등의식은 아직도 밑바닥 수준이다. 차별과 폭력을 계속 허용하는 의식과 관행을 변화시킬 설득력 있는 이론과 실천방식의 개발로 고민 중이다.

신혜수(한국여성의전화 연합회장·한일장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