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나서봐도 잘 돌아가지 않고, 그렇다고 시장에만 맡겨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면 또다른 길이 없겠느냐? ‘국가 실패’와 ‘시장 실패’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이 있다. 좌파의 계획경제와 우파의 신자유주의경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길…. 지난해 유럽에서는 이 새로운 노선이 일시에 각광을 받았고, 그 선봉은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와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였다.
▽그러나 1년도 안돼 ‘제3의 길’에 브레이크가 걸린 듯 싶다. 지난달 영국의 집권 노동당 의원 44명은 공동성명을 통해 블레어 총리의‘제3의 길’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달 들어서는 독일 사민당내 좌파들이 “슈뢰더는 배신자”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영국 노동당의원들은 블레어총리가 “영국사회의 빈곤과 총체적 불평등을 시정하는 노동당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 사민당내 좌파들은 슈뢰더총리가 연금을 동결하고 부유세(稅)를 폐지하는 등 개혁을 빌미로 사회정의를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난한다. 말만 ‘제3의 길’이지 신자유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DJ식 ‘제3의 길’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다. 그러나 일부 평자들은 ‘DJ의 길’이 애매모호하다고 말한다. 평등의 개념이 강한 민주주의와 경쟁력과 효율성을 앞세우는 시장경제가 과연 함께 가기 쉽겠느냐는 것이다. 하기야 그런 비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둘 다 중요하니 함께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총론적 선언에 각론을 들이밀고 꼬투리를 잡는 격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거창한 구호란 자칫 환상을 부르고 환상은 환멸을 낳기 십상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 엿보이는 그런 조짐에 눈 감으려해선 안된다. ‘고통분담을 통한 개혁’의 결과가 부익부 빈익빈이라면 그 역시 무서운‘배신’이 아니겠는가.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