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에 대한 구호행정이 ‘현장’이 아닌 ‘행정편의’ 중심이어서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어떤 수재민은 이전신고가 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생수를 배급받지 못했고 이재민대피소에 등록이 안돼 있다는 이유로 구호물품을 배급 받지 못한 할머니도 있었다.
5일째 수돗물이 끊긴 동두천시에서는 식수공급을 두고 곳곳에서 공무원과 주민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재민 유병열씨(44·경기 동두천시 중앙동)는 5일 통장집에서 생수를 나눠준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으나 두달 전에 이사한 유씨의 주민등록 이전신고가 안돼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에 대해 통장은 “확인절차 없이 물품을 나눠주다보면 수해를 당하지 않은 엉뚱한 사람들도 구호물품을 챙겨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년 연속 침수피해를 겪은 백옥순씨(71·동두천시 중앙동)는 며칠째 구호품을 한점도 받지 못하고 있다.
화병으로 쓰러진 남편을 친척집에 보내고 집을 지키느라 걸어서 20분이나 걸리는 이재민수용소를 찾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씨는 “수재민들을 정말 생각해준다면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라’는 식으로 구호품을 타가라고 할 게 아니라 수해현장으로 직접 물건을 전달해 주는 성의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산읍에 사는 한정숙씨(59·여)도 5일 수재민 수용소가 마련된 문산초등학교 상황실을 찾아와 “복구작업을 하려고 집에 간 사이에 구호물품 배급이 이뤄져 옷가지 등 구호품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다른 수재민들도 “첫날부터 모포가 어느 집은 서너장씩 돌아가고 어느집은 한장도 받지 못하는 등 가구별 인원 파악이 제대로 안돼 구호품 전달에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일선 공무원들은 이같은 불만에 대해 “나중에 감사에서 지적받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행정적 확인절차가 불가피하며 일손이 달려 일일이 현장에 나가 구호품을 전달할 수도 없다”는 입장.
수재민들은 그러나 “수해복구에 정신이 없는 사람들을 이리 오라 저리 가라 하는 것이 무슨 구호행정”이냐고 반문한다.
행정편의주의는 비단 수재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5일 오후 서울에서 문산까지 찾아온 10여명의 학생이 접수제한시간을 넘겼다는 이유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문산초등학교에 마련된 재해상황실 직원들이 “오후2시가 넘으면 더이상 자원봉사접수를 하지 않으니 재주껏 수재민을 찾아가 봉사하라”며 이들의 등을 떼민 것이다. 학생들은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구호소를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인데 재주껏 봉사지를 찾아가라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가 아니냐”고 말했다.
〈동두천·문산〓권재현·박윤철기자〉confetti@donga.com